김정훈 사회부장
2012년 12월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퇴임할 때에도, 그에 앞서 2011년 7월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물러날 때에도,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총장들은 20년 넘게 몸담아온 조직을 떠나야 했다. 응당 퇴임사에 있어야 할 “신임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열심히 일해 달라”는 식의 상투적인 당부는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제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바람에 후임 검찰총장의 배웅도 받지 못한 ‘불임(不姙) 검찰’의 연속이었다.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보면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1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 퇴임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야 퇴임사에 신임 검찰총장의 이름이 등장한다. 정 전 총장은 당시 퇴임식에서 “탁월한 지도력과 훌륭한 인품을 겸비한 신임 임채진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검찰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의 말로 퇴임사를 끝맺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이른바 ‘평화적 임기 교체’가 이뤄진 예는 그리 흔치 않다.
김 총장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 때 잇따라 검거에 실패하면서 전 국민의 성화와 함께 경고음이 울렸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왜 빨리 검거하지 못하느냐”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질타했고, 이때마다 김 총장의 거취 문제도 함께 거론됐다. 당시 자의 반 타의 반 책임을 지고 검찰을 떠나야 했던 모 검사장이 사석에서 “총장님 임기만은 꼭 지켜 달라”고 간절하게 당부했던 게 그저 한 말이 아니었다.
대개 검찰총장의 위기는 스스로의 과욕이나 모자람 때문에 자초하거나, 자신을 임명한 권력 핵심부의 불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를 이겨낼 수 있느냐는 사정기관 총수에게 중요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10월 검찰총장에 지명된 직후 사석에서 만났던 김 총장은 “임기 동안 뭐라도 한 가지는 이뤄놓고 가겠다. 그렇게 하나씩 쌓아나가다 보면 발전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큰 욕심 내지 않고 평범한 진리에 충실하겠다는 얘기였다.
김 총장이 이뤄놓은 한 가지가 뭘까 하고 곱씹어본다면 ‘절제의 정신’을 꼽고 싶다. 그 자신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서 큰 칼을 휘두르고 싶은 본능을 갖고 있었겠지만, 일관되게 절제하는 검찰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본다. 딱히 손에 잡히는 게 아니어서 별로 빛을 보지도 못했지만, 바로 그것이 8년 만의 평화적 임기 교체를 이루는 동력이 됐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