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골든타임’ 잡아라]<上>규제에 발목잡힌 사업 재편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업종전환, 인수합병(M&A) 등으로 선제적 사업재편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복잡한 규제에 묶여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까지 흔들리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국회에 계류 중인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을 연내에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산업계에서 커지고 있다.
27일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세계 경제흐름에 발 맞춰 선제적으로 사업재편을 시도하고도 각종 규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구조조정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주주총회의 특별결의 요건,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지주회사 규제 등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물류사업 확대를 위해 2011년 11월 그룹 내 물류사인 CJGLS와 함께 국내 최대 물류기업인 대한통운을 인수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행위제한(증손회사 규제)으로 신규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통운(손자회사)이 보유한 자회사(증손회사) 중 지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11개사는 지분을 100% 소유하거나 매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CJ는 국내의 또 다른 물류기업을 추가 인수하려다 포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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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이 이처럼 사업재편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글로벌 기업들은 사업재편과 M&A 등을 통해 끊임없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기업 사업재편과 혁신의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올해 9월까지 미국 대표 기업인 구글의 M&A 실적은 154건으로 같은 기간 삼성전자(37건)의 약 4.2배였다. 글로벌 기업들은 상황에 따라 주력업종까지 바꾸기도 했다.
산업계는 기활법이 하루빨리 시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활법은 기업이 과잉공급 해소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업재편을 추진할 경우 이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한시적(5년) 특례를 부여하는 법이다. 민관합동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주무부처가 사업재편계획을 승인하면, 해당 기업에 상법 및 공정거래법상 절차 간소화, 고용안정 지원, 세제·금융지원 등의 특례를 선택적으로 제공한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기활법이 ‘대기업 특혜법’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견·중소기업들이 법이 통과되기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며 “사업재편은 조기에 추진돼야 하므로 법 제정이 더 미뤄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