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낚싯배 돌고래호 전복 사고는 세월호 참사 후에도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낚시꾼 20여 명을 태우고 5일 오후 7시 25분 추자도에서 전남 해남을 향해 출항한 돌고래호의 사고 및 구조 과정 자체가 작년 4월의 세월호 침몰과 판박이다. 탑승자 명단에는 22명이 적혀 있지만 승선 신고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아 정확히 몇 명이 탔는지조차 모른다. 생존자 중 1명은 명단에 없었고, 명단에 있는 사람 중 4명은 실제로는 탑승하지 않았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 개조”를 부르짖으며 해양경찰 조직을 ‘해체’해 편입시키는 식으로 국민안전처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후 해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안전처가 존재하는지 국민은 전혀 체감할 수 없다. 해경은 밤새 한 명도 구하지 못했고, 사고 다음 날 오전 6시 25분경 3명의 생존자를 구한 것은 이번에도 해경이 아닌 어선이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출항 직후 ‘쾅’ 하는 소리가 나고 배가 뒤집히자 선장은 “배가 해경과 연결돼 (사고 나면) 구조하러 온다. 걱정하지 마라. 금방 온다”며 탑승자들을 안심시켰다. 돌고래호처럼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가 달린 배에는 긴급 조난 버튼이 있다. 그런데도 같이 출항한 돌고래1호 선장이 직접 신고할 때까지 왜 해경이 몰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돌고래호는 사고 직후인 5일 오후 7시 40분경 통신이 끊겼는데 해경이 신고를 접수한 것은 1시간 20분도 더 지난 오후 9시 3분이었다.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국민의 안전의식도 나아지지 않았다. 탑승자들 대부분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비를 맞아 구명조끼가 축축해져 다들 벗었다”고 말한다. 돌고래1호는 기상이 악화되자 회항했지만 돌고래호는 끝내 출항해 사고를 당했다. 해경은 “수많은 낚싯배를 일일이 점검하기 힘들다”고 민간에 책임을 떠넘기고, 민간 선주들은 성수기 돈벌이에 급급해 탑승자들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얼마나 더 큰 희생이 이어져야 정부나 민간이나 정신을 차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