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4호/특집 | 핑크 비아그라와 여자의 性] 전체 여성의 40% 성욕저하증 앓아…부부 대화·애정 표현 등 친밀감 높여야
성욕이 줄고 성관계에 별 흥미가 없는 성욕저하증은 여성에게 가장 흔한 성기능장애로 전체 여성의 40% 정도가 앓는다고 보고되고 있으며, 부부간 섹스리스 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성욕저하증이 일어나는 이유는 크게 신체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 다른 성기능장애에 따른 이차적 문제로 나눌 수 있다.
호르몬으로 치료할 수 없는 마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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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뿐 아니라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도 성욕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 FDA 승인을 받은 플리반세린(flibanserin)이 바로 이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에 영향을 미쳐 성욕저하를 개선하는 약물이다.
이외에도 성욕에 영향을 미치는 신체적 요인으로는 만성 신장질환이나 간질환 같은 소모성질환과 암, 당뇨 같은 다양한 신체질환이 있고,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일부 약물이 성욕저하를 유발하는 경우도 꽤 많다. 육체적 피로나 불안정한 자율신경계도 성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 원래부터 성기능에 문제가 있어 흥분장애, 성교통, 오르가슴장애 등으로 쾌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거나 통증을 느끼면 성행위가 싫어지고 성욕이 이차적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땐 근본 원인인 성기능장애를 고쳐야 성욕이 회복될 수 있다.
여성이 쾌감을 잘 느끼지 못해 성관계 욕구가 떨어지는 이유에는 물론 파트너인 남성의 문제도 있다. 남성이 너무 자신 위주로 성행위를 해 여성의 흥분과 만족에는 관심이 없거나, 조루·발기부전 등의 문제가 있을 때 그렇다.
성욕을 떨어뜨리는 심리적 원인은 더욱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각종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더 근본적으로는 보수적인 성장 배경 때문에 성에 대해 지나친 억제나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다. 과거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후유증 역시 성욕저하나 성기피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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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외도, 고부갈등, 경제적 문제를 비롯한 여러 부부 갈등 상황과 자녀 양육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부담 등도 성욕저하의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여성은 부부갈등이 성욕저하의 주원인인 경우가 많다. 킨제이연구소의 보고에서도 밝혀졌듯이 여성이 성적 만족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상대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친밀감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미국 제약회사 스프라우트가 내놓은 여성용 비아그라 ‘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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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기능에서 특히 성욕은 한 종류의 약에 좌지우지될 만큼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많은 성의학자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성적으로 훨씬 복잡하게 진화한 존재라는 데 동의한다. 여성에게 섹스는 단순한 성욕 충족뿐 아니라 임신과 출산, 육아와 연결된다는 의미를 지녀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안전장치를 두는 것이 한편으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성의 성욕은 다양한 신체적, 심리적 요인의 영향을 두루두루 받는다. 한 가지만 개선한다고 모든 여성의 성욕저하, 성기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성욕은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의 농도로만 조절되는 것도 아니고 여성호르몬 같은 성호르몬의 영향만 받는 것도 아니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애착관계, 본인의 신체 상태, 피로·스트레스·감정 상태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다양한 원인으로 유발될 수 있는 여성의 성욕저하증을 단일 메커니즘을 가진 한 종류의 약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복잡하고 다양한 영향을 받는 여성의 성욕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그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들을 찾아 중요한 것부터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특히 여성은 평소 상대와의 안정적인 관계에서 오는 친밀감과 애정, 유대감이 성욕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소 대화와 애정 표현, 함께하는 시간과 공유하는 관심사 등 부부가 함께 차곡차곡 쌓아가는 긍정적인 경험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성욕증진제는 핑크 비아그라 같은 약 한 알이 아니라 바로 이런 친밀하고 애정 어린 관계가 아닐까.
백혜경 강동우성의학클리닉연구소 원장 hkfoxwhite@nate.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년 9월 7일자 10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