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지하경제’ 중고폰 유통 세계] 2대중 1대 장롱 속 쿨쿨 소비자 1000명에게 물어보니
9년 동안 총 4번의 휴대전화 교체 과정 중 기자가 중고 휴대전화 단말기를 판매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앞의 두 번은 교체와 함께 대리점에 제공했고 블랙베리는 집에 보관했다. 갤럭시S2는 택시에 두고 내린 직후부터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국내에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는 5년여가 흘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 교체 주기(약 16개월)가 가장 짧은 나라다. 그간 쏟아지는 신형 휴대전화 사이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기자처럼 중고 휴대전화 처분에 무감각했다.
광고 로드중
한국갤럽 ‘중고폰 시장 소비자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8.2%가 “직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아직도 갖고 있다”고 답했다. 대리점에 반납하거나 판매한 응답자는 24.1%, 개인적으로 판매한 응답자는 13.2%였다. 분실·도난·폐기의 경우도 6.7%나 됐다. 조사는 전국의 20세 이상 59세 이하의 스마트폰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절반에 가까운 중고 휴대전화가 재유통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중고 휴대전화 시장 구조에서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중고 휴대전화를 처분하지 못한 482명의 이유 중 가장 높은 응답은 ‘처분해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적어서’(34.2%)였고,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라서’(33.0%)가 그 다음이었다.
향후에도 중고 휴대전화를 처분할 의향이 없는 이용자들은 ‘기기에 남아 있는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돼서’(56.5%)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현재 이동통신사나 우정사업본부의 공식 수거 경로를 거치지 않는 중고 휴대전화 시장에선 개인정보가 제대로 지워지지 않고 단순한 공장 초기화 과정만 거치고 해외 시장으로 나간다. 조사를 주관한 SK C&C 관계자는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적절한 중고 휴대전화 매입가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과 함께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크다는 점이 현재 국내 중고 휴대전화 시장 구조의 가장 큰 한계”라고 말했다.
○ 이통 3사 방치에 지하 중고 휴대전화 시장 자생
광고 로드중
우정사업본부의 중고 스마트폰 매입을 대행하는 A업체는 지난해 KT와 6월 13일부터 한 달간 중고 단말기 관련 시장을 공동 개척하기 위해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했다. KT 유통·대리점을 통해 중고 단말기를 A업체가 매입한 뒤 유통해 주고 그 수익으로 KT는 단말기 보조금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서울 직영점 10곳과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회수된 중고 휴대전화는 ‘0개’였다.
당시 테스트에 참여했던 한 대리점 관계자는 “당장 ‘나카마’(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유통·대리점을 찾아다니는 중고 휴대전화 개인 사업자)에게 넘기면 한 대에 3만∼5만 원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굳이 회사를 위해 이를 공식화할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이통 3사가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중고 휴대전화 수거·보상 제도는 ‘구색 맞추기’에 가깝다. 보상 단가가 나카마 단가에 훨씬 못 미치는 데다 중고폰 등급 오판정의 책임을 대리점주에게 지우기 때문이다. 수거 보상도 미미해서 SK텔레콤의 경우 대리점주에게 중고 휴대전화 한 대에 현금 5000원을 지급하는 데 그친다. 지난해 7월 SK텔레콤의 전국 유통·대리점에서 스마트폰 출고량 대비 중고 휴대전화 수거 비율은 4.3%에 그쳤다.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 순환에 관한 법률(자원순환법)은 이통 3사의 휴대전화 출고량에 대비해 의무적으로 회수해야 하는 중고 휴대전화의 비율을 규정하고 있다. 2013년 자원순환법 개정 이전에는 12% 기준이 적용됐고 개정 이후에는 법정 산출 기준에 따라 매년 재지정된다. 하지만 이통 3사 모두 법정 회수율에 훨씬 못 미치고 있어 수억 원대의 과징금을 납부하고 있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관계자는 “피처폰(일반 휴대전화) 시절에는 비교적 회수율이 맞춰졌지만 스마트폰 시기로 넘어오면서 공식 경로를 통한 회수량이 급속히 줄었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