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요동쳤다. YS의 청와대에선 “정직성은 정치인의 생명”이라는 비판이 나왔고 이기택 민주당 총재는 “우리 정치의 불행을 잉태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실질적 오너’가 돌아오자 동교동계 의원들은 ‘고용 사장’인 이 총재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총재가 거부하자 DJ는 곧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15대 대선 승리의 발판이 된 DJ 당이다.
▷DJ의 복귀는 그에 대한 정치적 수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YS의 문민정부는 초반에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실시 등 과감한 조치로 박수를 받았으나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참사가 터지고 차츰 개혁이 시들어 가면서 힘이 빠졌다. 1995년 6·27지방선거 때 전국 순회 연설을 하며 유권자의 지지가 여전함을 확인한 DJ는 지방선거 압승의 기세를 몰아 ‘3전 4기’로 프랑스 대통령이 된 프랑수아 미테랑을 떠올렸다. DJ의 정계 복귀와 공과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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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