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
임원 재직 3년 후 계열사 사장이 됐다. 계열사는 외국 회사의 지분이 더 많은 합자법인으로 그는 외국인 주주의 지명을 받아 대표이사가 됐다. 그리고 3년 후 54세가 되었을 때 사직했다. 아니, 잘렸다.
처음 6개월은 놀았다. “요즘은 백수가 더 바빠!” 그리고 채용 알선 회사를 통해 여러 곳에 지원서를 내고 여유 있게 기다렸다. 학력과 경력은 화려했고, 그가 성공시킨 신제품들은 지금도 시중에서 시장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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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상의할 것이 있다고 해서 필자와 만났다. 그는 “3년을 이렇게 보내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5, 6년 일하면서 직원들이 올린 서류를 결재하고, 마케팅 생산 개발 재무 부서 간의 의견 조정은 많이 했지요. 그러나 그런 경험이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제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대기업의 임원이었을 때 ‘갑’으로서의 행세만 할 것이 아니라 ‘을’에게 잘 해줬어야 한다는 반성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속한 기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동시에 퇴직 후의 생활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에게는 많은 을이 있다. 그중에서 두세 개 기업을 염두에 두고 그 기업의 내부 사정, 성장 가능성, 대기업과의 관계를 면밀히 파악하고, 친밀감을 돈독하게 해두면 퇴직 후에 그 기업에 고문으로라도 취직해 지금 기업과의 사업관계를 지원하고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을에게 특혜를 줘야 한다는 게 아니다. 갑과 을, 양쪽 기업을 동시에 이해하면 양사 모두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 제안을 할 수 있다는 게 그가 깨달은 교훈이다.
노년에 국민연금과 퇴직금만으로 사는 것은 재미가 없다. 가끔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친구들과 놀러 갈 수 있는 건강을 평소에 챙기면서 용돈도 벌어야 한다. 손자들 재롱만 보면서 노년을 보내면 사람이 비굴해질 수 있다. 아내가 차려주는 식사만으로는 노년의 공허감을 채울 수 없다. 그런 나의 삶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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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