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이탈한 공포영화 속 세 소녀가 말하는 생존전략
‘령’의 아야(나카조 아야미·왼쪽),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의 ‘그 소녀’(실라 밴드), ‘경성학교’의 주란(박보영)은 제각각 개성이 강하고 공포영화답지 않은 공포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위쪽 사진부터 아래방향) 영화사 하늘·딜라이트·영화사 찬란 제공
―공포영화 전통의 강자인 소녀들을 한자리에 모셨습니다.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주란(‘경성학교’)=아, 안녕? 난 주란이야. 몸이 아파서 요양을 할 수 있는 경성 근처 기숙학교로 전학을 왔지. 근데 학교가 좀 이상해. 선생님도 무섭고, 친구들이 자꾸 갑자기 사라져. 거기다 건강 때문에 주사를 맞고 있는데 몸이 자꾸 이상해. 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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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녀(‘밤을 걷는…’)=난 ‘악의 도시’에 살고 있는 ‘그 소녀(the girl)’, 뱀파이어야. 차도르를 입고 있어서 언뜻 이란 출신처럼 보이지만 실은 미국 태생이지. 혼자 잘 살고 있지만 먹잇감을 찾아 밤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쓸쓸하기도 해.
―세 분 모두 굉장히 아름다우신데요. 공포영화 주인공은 원래 목도 좀 꺾이고 갑자기 TV에서 기어 나오면서 사람들 겁을 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야=그건 ‘주온’ ‘링’ 시리즈 제작사인 일본 가도카와픽처스 출신인 내가 설명할게. 나온 지 10년이 넘은 ‘주온’ 식의 공포 분위기는 이제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아. 익숙해서 충격적이지 않거든. 차라리 나처럼 미모로 승부하는 게 나아.
▽주란=공포영화 관객은 우리 또래의 여자들이 많잖아. 그러니까 예쁜 소품, 아름다운 화면들로 눈길을 사로잡는 거지. 어딘가 불안정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도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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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시고요. 그런 세 분께 ‘이건 배신이다’ ‘공포영화가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소녀=무섭기만 한 공포영화는 촌스러워. 공포영화처럼 인간의 극단적인 감정을 보여주기 좋은 장르도 없어. 담을 주제도 무궁무진하고, 표현 범위도 넓기 때문에 다른 장르랑 잘 어울린다고. 난 하이틴 로맨스에 서부극까지 이것저것 섞었는데도 꽤 괜찮잖아?
▽아야=어쩔 수 없어.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안 보니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거지. 근데 나처럼 예쁜 애가 예쁜 교복 입고 나오는데 겨우 3만5000명 정도 봤다더라. 우린 이제 정말 안 되는 걸까? 아, 다시 방에 틀어박힐까봐.
▽주란=우린 사정이 좀 낫다. 지난주에 개봉했는데 25만 명이 넘게 봤대. 10, 20대 여자들이 많이 본다고 해. 근데, 저기, 나, 몸이 자꾸 뜨거워. 관객 수 얘길 들으니까 갑자기 막 화가 나면서 힘이 생기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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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말: 김봉석 영화평론가, 장병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