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이잉, 위이이잉.”
10일 오후 3시 전남 고흥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항공센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속 수직이착륙 무인기 ‘TR-60’이 헬기처럼 로터(프로펠라)를 90도로 세운 채 서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50m 가량 올라갔을 때쯤 잠시 뒤로 살짝 물러서는가 싶더니 이내 고도를 높이며 앞으로 나갔다. 1km 상공까지 올라간 TR-60은 비행기처럼 로터를 수평으로 전환해 속도를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시속 150km에 이르자 TR-60은 고흥의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이날 항우연의 항공센터에선 자체 부착한 태양광 발전으로 장시간 체공이 가능한 EAV-2, 유인기를 무인기로 전환한 유무인복합기 CFT 등 다양한 무인기의 비행시연이 있었다. 이중 단연 눈에 띈 것은 TR-60이었다. 헬기처럼 수직이착륙이 가능하면서도 최대 시속 240km에 이르는 고속비행이 가능한 틸트로터(Tiltrotor) 무인기 상용화 모델인 TR-60이 언론에 최초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항우연 관계자는 TR-60과 모양은 똑같지만 크기는 그보다 두 배쯤 보이는 큰 무인기를 가리켰다. 2002년부터 9년 9개월간 정부가 97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개발한 틸트로터 무인기는 TR-100이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쾌거였다. 이후 TR-100을 기반으로 실용화에 적합한 크기로 만든 것이 TR-60이다. TR-100을 60% 축소했다고 해서 TR-60이란 이름이 붙었다. 현재 TR-60은 상용화 예산 확보를 위한 예비타당성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예산이 확보되면 2016년부터 본격적인 상용화에 들어간다.
요란한 굉음도 TR-60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1km 상공 위로만 올라가도 TR-60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TR-60은 최대 4km 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다 헬기에 비해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어 최고의 무인기로 평가받는다.
TR-60은 고흥 주변을 두 바퀴 돈 뒤 20여 분만에 이륙했던 활주로로 다시 돌아와 수직으로 착륙했다. 당초 민간용으로 만들어졌지만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거나 수색할 수 있어 군사용으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TR-60이 상용화될 경우 백령도처럼 북한과 맞닿아 있는 서북도서지역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사막과 같은 넓은 지역을 정찰해야 하는 중동 국가들도 TR-60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아직까지 무인기의 용도는 군사용이 대부분이지만 민간시장에서 수요가 늘면서 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무인기 시장이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구글과 페이스북 등 정보통신(IT) 업체들까지 무인기 시장에 뛰어들면서 향후 10년간 민간 무인기시장은 연간 35%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고흥=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