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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승건]재일교포 안창림과 추성훈

입력 | 2014-12-31 03:00:00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기자들이 (추성훈에 대해) 많이 물으시는데 말 못합니다. 어떤 분인지 잘 모르기도 하고, 제 얘기가 기사에 이상하게 나와 그걸 그분이 보면 기분 나쁘실 겁니다. 솔직히 (귀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물어본 기자가 부끄러웠다. 유도 청년 안창림(20)은 그렇게 얘기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안창림을 처음 본 것은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였다. 그는 자신보다 세계랭킹이 200계단 가까이 높은 선수를 73kg급 결승에서 한판으로 꺾었다. 일본에서 대학 2학년까지 다니다 올 3월 한국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으로 성인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그에게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추성훈을 아느냐”는 질문이 나왔고 “귀화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이후 ‘안창림 “추성훈처럼 귀화 생각 없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추성훈을 비난하는 내용이 많았다. 최근에 만난 안창림은 자신의 대답을 ‘유도’해 짜깁기한 기사가 나올까 우려하고 있었다.

요즘은 ‘추사랑 아빠’로 더 유명하지만 추성훈은 일본에서도 장래가 유망한 유도 선수였다. 일본 국적이 아니기에 자신보다 못한 일본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던 추성훈은 1998년 국내로 와 실업팀에서 뛰며 잠시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하지만 그는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 선발전에서 파벌 탓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을 굳혀 갔다. 결국 “말을 해도 안 됩니다, 여기는. 귀화해서 유도해야지”라는 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그는 일본의 아키야마 요시히로로 출전해 81kg급에서 한국 선수를 꺾고 우승했다. 당시 ‘일본인 추성훈’을 향한 국내의 시선은 차가웠다. 한 스포츠신문의 1면 제목은 ‘추성훈, 조국을 메쳤다’였다. 언론부터 이러니 추성훈을 ‘배신자’ ‘매국노’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추성훈이 힘들게 찾은 한국을 왜 떠나야 했는지는 그들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우리 사회가 재일교포를 보는 시선은 대단히 이중적이다. 그들이 한국 국적을 지키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는지는 외면하면서, 고민 끝에 귀화를 하면 배신자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재일교포 3, 4세가 한국말을 못하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 어설픈 애국자도 많다. 제 발로 이 나라를 떠난 재미교포는 부러워하면서. 힘없는 조국을 만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에서 사는 게 무슨 죄라도 된다는 말인가. 재일교포에게 조국이 해 준 게 뭐 있다고 국적 유지를 당연히 여긴다는 말인가.

안창림은 국내 유도의 주류인 용인대에 편입했기에 추성훈처럼 파벌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할아버지의 나라에 온 지 1년도 안돼 최강자로 우뚝 선 안창림이 아무쪼록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정상에 올라 추성훈이 갈망했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루기 바란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