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50대 구청 찾아 긴급복지지원 문의… “서류 부족” 답변에 청사 8층서 투신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 동대문구청에서 중년 남성이 이리저리 건물 내부를 헤매고 다녔다. 힘없이 터벅터벅 계단을 올랐고 술에 취한 듯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제자리에서 고민하듯 머물러 있는 모습도 목격됐다. 1시간 가까이 건물 여러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남성은 오후 5시 30분경 8층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어 복도 끝을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이 남성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20분 뒤 구청 건물 옆 좁은 인도 위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조금 전까지 구청 이곳저곳을 헤매던 바로 그 남성이었다. 숨진 사람은 구청 근처에서 목욕탕 구석을 개조한 월세방에 살던 이모 씨(58)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이날 오후 4시경 구청 3층의 복지정책과를 찾았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수년간 월 30여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그러던 중 더이상 지원금으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공공근로에 지원키로 했다. 직접 돈을 벌어 자립하기 위해서다. 올해 5월 그는 기초생활수급을 해지했다. 그래야 공공근로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청자가 많아 내년 2월에야 순번이 돌아온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도, 공공근로의 끈도 떨어져 생활은 더 어려워졌고 한 달 30만 원인 방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10월엔 27만 원을 냈고 11월 치는 5만 원밖에 내질 못했다. 이달 방세는 한 푼도 못 냈다. 주인의 눈치 탓에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광고 로드중
이 씨는 가족과 왕래 없이 홀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혼인 이 씨의 가족은 82세 노모와 여동생(56)뿐이다. 다들 형편이 어렵다 보니 같은 동대문구에 살면서도 왕래가 거의 없었다. 동생은 경찰 조사에서 “2년 전 오빠가 전화를 걸어 ‘5만 원만 보내 달라’고 해 부쳐준 것이 마지막 기억”이라고 진술했다. 얼굴을 본 것은 4년 전이었다. 그때도 이 씨는 “3만 원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고 동생은 2만 원을 더해 5만 원을 쥐여 보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전해진 비보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노모와 함께 병원을 찾은 동생은 빈소도 차리지 못한 채 발인 일정만 정하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갔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