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문中 퇴임 79세 임채승씨 중태 학교 앞 ‘교통지도 출근’ 6년… 무면허車 돌진에 학생 보호하려다 후배교사 20명 “가해자 엄벌” 탄원서
임채승 씨(가운데)가 서울의 한 청소년회관에서 한자를 가르친 학생들과 함께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임채승 씨 가족 제공
임 씨는 용문중학교 교감으로 16년 전쯤 정년퇴임했다. 퇴직하기 몇 개월 전에 늦깎이로 교감이 된 뒤 얼마 안 돼 학교를 떠났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각별했다. 퇴직 후에도 학교에 나와 상담교사 역할을 했고, 방학 때면 청소년회관을 찾아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쳐 줬다. 용문중·고교를 운영하는 재단에 조용히 매년 100만 원씩 장학금도 기부했다.
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를 시작한 것은 5, 6년 전쯤부터였다. 임 씨의 아들(46)은 “어머니가 ‘연세가 많으셔서 힘드니까 교통지도를 그만하시라’고 아버지께 몇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번 겨울까지만 하겠다’고 답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마음으로 달려왔지만 정작 운전자 A 씨는 쓰러진 노인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구급차가 와 임 씨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자 A 씨는 차를 버리고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울 성북경찰서 경찰관들이 출동해 A 씨의 차를 경찰서에 끌고 왔고 추적 끝에 용의자를 특정했다. A 씨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운전자가 비틀거리면서 술 냄새를 풍겼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사고 당일 A 씨의 집에 찾아갔다. 하지만 A 씨는 집에 없는 척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몇 시간 뒤엔 만취 상태로 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그러고는 “경찰이 왔을 땐 무서워서 집에 없는 척했다. 사고 당시엔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임 씨의 가족뿐 아니라 용문중 교사 20여 명도 비보를 접하고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피해자가 평소에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며 봉사했는지와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임 씨는 고려대 안암병원에 입원해 뇌수술을 받았지만 중태에 빠져 여전히 의식이 혼미한 상태다. 뺑소니 사고 때문에 정년퇴임도 갈라놓지 못했던 전직 교감의 학생 사랑은 그렇게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성북경찰서는 A 씨를 뺑소니 혐의로 18일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