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정치부장
그나마 원혜영이 위원장을 맡은 정치혁신실천위원회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혁신위가 지금껏 내놓은 혁신 방안으로 국회의원 세비 동결과 야당 몫이었던 국회도서관장직을 외부 공모하겠다고 발표한 정도가 기억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야당 혁신의 ‘결기’가 느껴진다”고 대답하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
혁신위는 그제 토론회 발제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친노(친노무현)계파 패권주의를 문제 삼았다. 친노의 좌장인 문재인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내년도 전당대회 불출마를 압박했다. 문재인은 “너무 미묘한 문제여서 여기서 답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피해갔다. 당내에선 ‘계파 해소’를 둘러싼 공방만 난무할 뿐 결국 흐지부지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더 많다. 실질적으로 계파 해소를 이끌어낼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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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인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권력을 잡지 못한 야당이 무슨 힘이 있느냐”라고. 야당 타령으로 국민의 공감을 끌어내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지금 국민은 여야 구별 없이 정치권 전체를 ‘혐오 대상’으로 보고 있다.
지금의 야당은 비교조차 꺼리는 박근혜 정부가 혁신의 깃발을 내건 것은 오히려 야당 시절이었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던 2006년 4월 당 소속 김덕룡 박성범 의원을 공천 금품 수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한 것이 대표적이다. 같은 당 의원들을 노무현 정부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자 격렬한 내부 반발이 터져 나왔다. 초유의 사건에 당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그 혼돈 속에서 한나라당의 쇄신 의지는 국민들에게 각인됐다.
지금의 야당 혁신위가 내부를 향해 비슷한 날을 세울 수 있을까.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김현 의원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고, 설훈 의원의 ‘노인 폄하’ 발언 논란 등이 이어졌는데도 당 지도부의 대응은 시종 뜨뜻미지근했다. 혁신은 자기 살을 베어내는 진정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권만 떠올리면 험한 말을 쏟아내는 국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려세우려면 그래야 한다.
최근 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은 ‘박근혜 정치를 넘어서’란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 후반에 인용된 글에 눈길이 갔다. 1980년대 대통령선거에서 3번 연속 패배한 미국 민주당은 ‘제3의 길’로 노선 전환을 했고, 빌 클린턴 집권의 길을 열었다. 그 성찰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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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도 “비노(비노무현) 중도파가 주도했기 때문에 친노 견제용일 뿐”이라는 얘기가 나돈다고 한다. 남 탓만 하기엔 지금 야당은 너무 절박하다. 자기 성찰은 야당에도 절실한 혁신 과제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