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두 스포츠부 차장
그런 면에서 올해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상품 제조기는 염경엽 넥센 감독이다. 1위부터 3위까지의 팀 순위가 일찌감치 결정되는 바람에 스토리 가뭄을 겪고 있는 올 시즌 박병호와 강정호의 한집안 홈런왕 경쟁, 밴헤켄의 투수 3관왕 도전, 팀 창단 6년 만의 첫 우승 도전 등 꾸준하게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크게 보면 염 감독 스스로가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염 감독의 스토리는 울림도 크다. 반전(反轉)이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염 감독이 넥센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그의 성공 신화를 예측한 야구계 인사는 거의 없었다. 언론의 전망도 물음표가 대부분이었다. 프로선수 10년 동안 타율 0.195를 기록한 후보 선수 출신인 데다 코치로서 지도력을 인정받을 만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뛰어난 지도력으로 배구계의 제갈공명으로 불리는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선수 시절 나는 벤치 멤버였다. 그래서 주전은 물론이고 비주전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선수들과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고 그것이 나의 강점이다”고 말한다. 염 감독도 다르지 않다. 2군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선수들과의 대화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경기 전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중에도 앞을 지나가는 선수가 있으면 불러 세워 잠깐이라도 얘기를 나눌 정도다. 넥센 선수들은 “감독님은 항상 믿는다는 말을 자주 해준다. 선수들을 잘 이해해 준다”고 말한다.
물론 징크스를 피해가는 감독도 많다. 프로야구 삼성 류중일 감독도 그중 한 명이다. 고교 시절부터 스타였던 그는 감독으로서도 삼성을 프로야구 통합 3연패로 이끌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또 다른 의미에서 반전 스토리다.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유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류 감독이지만 경기 중 선수들의 수비 실책에 얼굴을 찡그리는 일은 거의 없다. 한 프로야구 단장은 “류 감독은 스타 출신인데도 눈높이를 낮춰 선수들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소통으로만 보면 류 감독과 염 감독이 감독들 중 최고다”고 말했다.
류중일과 염경엽, 두 감독이 반전 스토리를 만들어낸 비기(秘器)가 스포츠에서만 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현두 스포츠부 차장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