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위기 놓인 日군마현 ‘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 가보니 ‘군마의 숲’ 공원 북쪽 끝에 위치… 방문객 대부분 “그런게 있었나요” 극우단체 2년전부터 철거 요청… 군마현, 10년 허가기간 갱신 심사중
17일 오후 일본 군마(群馬) 현 다카사키(高崎) 시에 있는 현립 공원 ‘군마의 숲’.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간부였던 김경형 씨가 ‘군마 현 조선인·한국인 강제연행희생자 추도비’ 앞에 섰다. 이 추도비는 2004년 4월 일본 현립 공원에 처음 세워져 한일 우호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극우단체들이 “추도집회에서 정치 구호를 외친다”고 주장하며 행사를 방해해 왔다.
추도비는 공원의 북측 경계선상에 위치해 있었다. 큰 소리를 내도 공원 중심까지 닿지 않았다. 공원 안내도에는 추도비가 표시돼 있지 않아 대부분의 방문객은 추도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날도 1시간 동안 시민 3명이 지나갔다. 일본 극우들이 외진 곳에 세워진 추도비를 문제 삼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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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뒷장에 세부 허가조건이 있습니다. 그중 ‘종교적, 정치적 행사 및 관리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조건 보이지요. 하지만 공원 안에서 연 추도집회에서 정치적 발언이 있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시민단체인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은 매년 4월 추도비 앞에서 추도집회를 열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추모발언을 했는데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주지 않는 것은 불법이다” 등과 같은 말을 했다.
이를 문제 삼아 극우단체가 현 의회에 ‘추도비 설치 허가 취소’ 청원을 냈고 현 의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청원을 채택했다. 당시 극우단체인 ‘힘내라 일본! 전국행동위원회’ 군마 현 지부의 홈페이지에는 “현 의회의 결론이니 현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지사실과 도시계획과에 철거 요청을 해야 한다. 팩스와 e메일 주소는 아래와 같다”는 안내문이 떴다. 조직적인 철거운동이다. 현은 올해 1월로 만료된 설치 허가기간을 갱신할지를 현재 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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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현이 우익 눈치 봐”
현청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사무국이 있다. 추도비 설립에 적극 참여한 이노우에 데루오(猪上輝雄) 사무국장은 “일본은 아시아 여러 국가에 크나큰 손해를 안겼다. 특히 한반도에 말로 할 수 없는 잘못을 했다. 그걸 잊지 말고 반성하는 게 한일 우호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며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그의 뜻은 추도비 비문에 반영됐다. 정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글씨가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적혀 있다. 뒷면에는 ‘추도비 건립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으로 한국어와 일본어로 반성과 사죄의 뜻을 담았다.
이노우에 씨는 “공원에 추도비를 세우면 각종 제약이 따르니 사유지에 세우자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민과 관이 함께 과거를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현립 공원 안에 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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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씨는 “10년간 이상한 우익이 생겨나고 군마 현 의회에도 우익 성향의 인사들이 진출했다. 그러면서 터무니없는 결정을 하려 한다. 현이 우익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카사키·마에바시=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