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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어디에…

입력 | 2014-06-25 03:00:00

한글 창제동기-의미-사용법 적은 해설서
6년전 발견됐다가 행방 묘연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왼쪽)과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또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에서 발견된 해례본은 현재 소장자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훼손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아일보DB·문화재청 제공

5월 29일 대법원에서 흥미로운 판결 하나가 나왔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고서적 수집상 배모 씨(51)에게 무죄를 확정하는 판결이었습니다. 이 해례본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일한 책입니다.

이 해례본은 현재 배 씨가 갖고 있습니다. 무죄 판결이 나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고 국가에 기증하겠다던 배 씨는 현재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 국보급 문화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과연 무사한 걸까요.

○ 또 하나의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2008년 7월, 문화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고서적상 배 씨가 올린 글이었습니다. “집에서 고서적 한 권이 나왔는데 국보 문화재로 지정 신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문화재청 전문가가 현장조사를 나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 훈민정음 해례본이었기 때문이지요. 조사 현장에서 만난 배 씨는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서문 네 장과 뒷부분 한 장이 없어졌지만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가치가 매우 높았습니다.

○ 법적 분쟁 속으로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한 달 뒤인 2008년 8월 상주시에 사는 골동상 조모 씨가 펄쩍 뛰었습니다. 조 씨는 “그 해례본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집안 유물이다. 배 씨가 내 가게에서 고서적들을 30만 원에 사가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슬쩍 끼워 훔쳐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고는 배 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요. 조 씨는 2011년 6월 대법원에서 승소했습니다. 대법원이 “해례본을 절취한 배 씨는 조 씨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한 겁니다.

그러나 배 씨는 이를 거부한 채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었습니다. 검찰과 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강제 집행과 압수수색을 했지만 해례본의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배 씨는 “내가 훔쳤다면 국보 지정 신청도 안 했을 것이다. 해외로 튀어도 벌써 튀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난감해졌습니다. 배 씨가 해례본을 내놓지 않자 문화재청은 배 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형사소송이 시작된 것이지요. 배 씨는 2012년 2월 형사소송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2012년 9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고 이번 최종 상고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난 겁니다.

○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그럼,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것은 과연 어떤 책일까요.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인 1446년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그 의미, 사용법 등을 소개한 해설서랍니다. 여기서 해례는 ‘예를 들어 해설을 한다’는 뜻이지요. 조선시대 당시엔 이 내용을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어냈습니다. 붓으로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서 만든 책이 아니라 목판으로 도장 찍듯 만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여러 권을 만들었을 테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종이가 삭아 사라졌을 수도 있고 불에 타 버렸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그동안 존재가 알려진 해례본은 간송미술관이 갖고 있는 한 권뿐이었습니다.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우,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 편의상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것과 구분하기 위한 의미도 있답니다. 상주본이 간송미술관 것과 동일한 판본이라고 하니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 상주본은 어디에

그런데 걱정입니다. 국보에 버금가는 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배 씨는 대법원 판결 이전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 나의 억울함이 밝혀지면 국가에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무죄로 판결한 대구고법과 대법원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고 “그것이 역사와 민족, 인류에 대한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무죄 판결이 나자 배 씨는 마음을 바꿔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훼손되지나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문화재청은 배 씨가 해례본을 낱장으로 뜯어 비닐로 포장해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전문가들이 2008년 배 씨의 집을 찾았을 때 그가 낱장으로 뜯어놓은 것을 보여 줬기 때문이지요. 배 씨가 비닐로 싸서 항아리 등에 넣은 뒤 땅에 묻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더더욱 걱정이 아닐 수 없답니다. 해례본은 습기에 민감한 종이 문화재이기 때문에 훼손의 우려가 더욱 심각하니까요.

우리의 한글, 훈민정음에 관해 가장 소중한 책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간송미술관본과 상주본 두 권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인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기대해봅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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