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납북자 협상 관전법 2002년 김정일 “이미 사망” 전하자… 日 反北여론 속 협상 진전 안돼 생존 가능성 日서 꾸준히 제기… “유골만 가져오면 실패로 끝날 것”
관방 부장관 자격으로 동행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당시 심경을 전했다.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의 노력은 무엇이었던가, 납치문제를 해결하자는 운동을 전개한 것이 혹시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닐까. 부끄러운 생각이 가슴을 쳤다.”
그날 북-일 정상은 국교정상화를 추진한다는 평양선언을 발표했으나 일본의 들끓는 반북(反北) 여론 속에 추가 협상을 진전시키지 못했다. 북한은 2004년 11월 요코타 씨의 유골 일부라는 뼈를 일본에 제시했으나 다른 사람의 유전자(DNA)가 검출되자 일본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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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타 씨는 중학교 1학년(13세)이던 1977년 11월 15일 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친 뒤 귀갓길에 실종됐다.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요코타 씨의 부모는 이듬해 기독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그 후 20년이 지난 1997년 탈북 북한공작원인 안명진 씨가 북한에서 요코타 씨를 목격했다고 증언하면서 요코타 씨는 납치 피해자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아무 죄도 없는 13세 어린 소녀가 납치됐다는 소식은 일본인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이번 협상을 앞두고 2004년 유골 검증의 정확성 여부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요코타 씨의 유골을 감정한 일본 데이쿄(帝京)대 요시이 도미오(吉井富夫) 교수는 2005년 2월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분석 결과는 확정적인 것이 아니며 유골 샘플이 (이물질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은 요코타 씨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북-일 교섭에 나선 것도 생존 가능성을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북-일 관계에 정통한 일본 소식통은 “일본의 분위기를 볼 때 아베 총리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나 요코타 씨의 생존 소식 대신 유골을 받아오는 방식이라면 2002년 북-일 교섭 실패의 악몽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마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특정 실종자 몇 명을 돌려보내는 것으로는 일본 국민이 대규모 제재 해제나 경제 지원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면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