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의 대륙/울리 쿨케 지음·최윤영 옮김/252쪽·1만6000원·을유문화사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19세기 전반 최고의 과학영웅이었다. 왼쪽부터 30대의 훔볼트가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강에서 채집한 식물을 연구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훔볼트의 이름을 딴 훔볼트 펭귄. 훔볼트가 남미 탐험여행에서 직접 스케치해온 뒤 전문 화가를 고용해 수채화로 그린 난초. 을유문화사 제공
훔볼트는 왜 그토록 유명한 이름이 된 것일까. 이 책에 그 해답이 담겼다. 부유한 명문 귀족가문 출신의 훔볼트 형제는 대조적 삶을 산다. 어릴 적부터 천재로 불린 형이 인문학에 매진할 때 동생은 자연과학과 모험의 길을 택한다. 알렉산더는 최초의 학자 탐험가였던 제임스 쿡 선장을 흠모하면서 광물학, 식물학, 동물학, 천문학에 심취했다.
그뿐만 아니다. 전설의 나라 ‘엘도라도’가 존재할 수 없음을 입증했다. 또 오리노코와 아마존 두 개의 거대한 강을 연결해주는 자연운하(수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훔볼트는 19세기 초까지 세계 최고봉으로 여겨진 에콰도르의 침보라소 산(해발 6310m) 정상에 가장 가까이(5881m) 올라간 사람, 즉 세계에서 가장 높이 올라간 사람이기도 했다.
사실 훔볼트 이전만 해도 남미는 약탈의 대상이었지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콜럼버스가 남미를 발견했다면 훔볼트는 남미를 발굴해냈다. 이를 위해 훔볼트는 엄청난 관측·실험 장비와 자료를 들고 모기떼에 시달리며 밀림을 헤집고 다녔다. ‘걸어다니는 대학’이란 평을 들을 만큼 방대한 지식과 강렬한 호기심, 막대한 재산, 열대기후를 견디며 3만 km를 여행한 강철체력, 자신의 연구를 위해 사람을 사로잡는 사교력을 겸비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90세까지 장수한 그는 이런 탐험을 토대로 다양한 과학 글을 발표했는데 말년엔 지구와 별, 우주까지 아우르는 ‘코스모스’(전 5권)를 펴냈다. ‘다윈 이전에 훔볼트가 있었다’는 이 책의 평가를 빌려 말하자면 ‘칼 세이건 이전에도 훔볼트가 있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