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은 사회평론가
첫날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배는 바다에 떠 있었다. 워낙 큰 배이기도 했고, 구조됐다고 하니 별일 아닌 줄 알았다. 한밤중도 아니고 환하디환한 대낮이었는데 그동안 대체 뭘 한 걸까? 조난 신호를 보낸 후 선체가 전복되기 전까지 90분 넘게 바다 위에 떠 있었는데도 배를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뉴스를 보면 볼수록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사고 발생부터 탈출, 구조 과정과 이후 수습까지 그야말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탑승 인원만 해도 그렇다. 배를 탈 때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를 가더라도 승선권에 이름, 주민번호, 연락처를 적게 되어 있고, 탑승 시 이 승선권과 신분증을 대조, 확인하게 되어 있다. 분명 절차가 있으니 지키기만 했다면 몇 명이 탔는지를 놓고 오락가락할 여지가 전혀 없는 사안이다. 누가 탔는지, 몇 명이 탔는지도 모르는 채 국내에서 가장 큰 여객선이 그 먼 거리를 운항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정상이다.
정기 검사를 해야 한다는 절차도 이런 사고 후에 만들어졌으리라.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매뉴얼과 절차가 있어도 지키지 않는 관행이 비단 이 해운업계뿐일까. 사회 곳곳이 이런 지뢰밭으로 가득할지 모른다. ‘그런 거 다 지켜가면서 살면 못 산다, 적당히 하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따지고 드느냐, 관행이니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한두 번 듣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만약 단체 여행객이 탄 배의 출항이 늦어졌는데 전체 인원 점검을 하려는 선원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바쁜데 빨리 가자”부터 “사정 다 알면서 사람이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냐”는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특히 업종을 막론하고 안전 관련 업무 종사자는 찬밥 신세다. 그게 뭐 하는 일이 있냐고 대놓고 면박 주는 사람도 있고, 그 업무들조차 외주화된 지 오래다. 규제 완화가 대세인 터에 그나마 있던 안전 관련 규제들도 완화되거나 없어질 판이다. 대형 사고가 터졌으니 한동안 또 특별점검이니 뭐니 난리법석을 떨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전은 또 귀찮고 돈 들어가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되돌아갈 것이다.
얼마 전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이미 잊혀지고 있지 않은가. 학생들이 투신자살한다고 창문을 못 열게 만들고, 건물이 붕괴되니까 대학 오리엔테이션(OT)을 못 가게 하고, 인턴 성추행 사건이 터지니까 여자 인턴을 안 뽑고, 여객선이 침몰하니까 수학여행을 보류한다. 이런 걸 대책이라고 내놓고 우리는 열심히 화내고 욕하다가 또 잊을 것이다.
이 사건은 앞으로 누가 어떤 말을 하든 본능에 따라 행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뼈저린 교훈을 다시 한 번 남겼다. 오죽하면 ‘사고 발생 시 관리자의 지시와 통제를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침착하게 행동해서 때늦을 거라면 혼란이 가중되더라도 더 빨리 움직이는 게 낫다’ 등의 내용을 담은 ‘새 대한민국 재난 응급 대처법’이 나왔을까.
정지은 사회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