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캄프 회장이 말하는 경쟁력
346년 역사의 독일 머크의 지주회사 이머크의 수장인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프 회장은 “돈이 아닌 가치를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라고 말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최근 한국머크의 사업 점검차 방한한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프 박사는 머크의 지분 70.3%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회사 이머크(E. Merck KG)의 회장이자 머크가(家) 일족을 대표하는 협의체인 가족위원회 회장이다. 하버캄프 회장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머크의 장수 비결에 대해 “후손에게 돈이 아니라 가치를 물려주는 문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51호(4월 15일자)에 소개된 하버캄프 회장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지주회사인 이머크와 운영회사인 머크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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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가 좀 복잡하다.
“기업에 대한 가문의 통제력은 계속 유지하되 소유와 경영을 엄격하게 분리하기 위해 고안한 구조다. 머크의 일상적인 비즈니스는 전문 경영인에게 전적으로 일임한다. 인수합병(M&A)이나 사업부 매각과 관련한 결정도 그 규모가 1억 유로를 넘지 않는 한 머크가(家) 사람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머크 최고경영진이 재량껏 결정한다. 하지만 머크 최고경영진에 대한 선임·해임 권한은 이머크의 파트너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경영에 대한 관리 감독을 통해 가문의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룹의 전체 전략 수립처럼 중대 사안에 한해 파트너위원회가 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억 유로가 넘는 대규모 M&A처럼 그룹 전체의 전략을 바꿀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선 반드시 파트너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머크의 최고경영진 5명은 머크 가문과 혈연관계가 전혀 없지만 마치 ‘입양’된 가족처럼 대우한다. 이를 위해 머크 최고경영진 5명은 머크가 아닌 이머크에 속하게 했다. 즉, 월급을 주는 주체가 머크의 모회사인 이머크다. 전 세계 3만8000여 명의 머크 직원들과 고용주가 다르다. 이들 5명은 가족위원회 회장인 나와 파트너위원회 회장과 함께 자신이 내린 업무 결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재임기간 중 자신이 직접 관여한 결정에 대해서는 회사를 떠난 이후로도 5년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영입된 비(非)머크가 사람들이라도 오너와 같은 입장에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다. 감히 말하지만 머크의 지배구조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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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머크 가문의 일원이 머크 회사의 신입사원이나 중간 관리자로 고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들이 머크에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후 머크의 고위 직급에 지원하는 방법뿐이다. 지원을 했다고 다 뽑아주는 것도 아니다. 엄격한 평가 과정을 거쳐 가문의 일원이라는 후광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승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일족에게만 일할 자격을 준다.”
―머크가 346년이나 장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언제나 회사의 이익을 가문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해 온 가치관이 주효했다. 이런 가치관은 우리, 즉 머크가(家) 사람들은 회사를 소유한 게 아니고 후대를 위해 신탁관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믿음을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믿음 때문에 우리는 분기별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세대를 뛰어넘어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을 견지할 수 있었다. 당장 돈을 버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가치와 유산을 키우는 데 더 큰 무게를 둔다.”
―경영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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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