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유럽 대부분의 국가, 미국의 모든 주와 호주가 혼전계약을 인정하고 있다. 혼전계약의 방식이나 유효 요건, 내용은 나라마다 다양하다. 방식은 서면 작성이나 공증 요건도 있고, 변호사 대리나 증인을 요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혼전계약 방식은 혼인 전에 각자 보유한 재산과 혼인 후 일방이 증여나 상속받게 될 재산은 고유재산으로 인정하고 이혼 시에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이혼 시 부양료나 위자료 청구를 미리 포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혼전계약에 유언장의 효력이 있는 내용을 담기도 하는데, 각자 고유재산에 대해서는 배우자 사망 시에 상속재산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혼 후 공동기여로 형성한 공동재산에 대해 재산분할을 포기하게 하거나 종교를 강요하는 조항 등은 무효가 될 수 있다.
한국의 혼전계약은 ‘혼인 기간 중 재산관리’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데 의미가 있을 뿐이다. 부부재산약정등기부에 각자의 고유재산을 열거하고 각자 소유로 한다고 등기했다 하더라도 이는 혼인 기간 중 각자 재산의 처분과 관리의 자유를 인정받는 데 의미가 있을 뿐, 혼인 해소 시에는 별 의미가 없게 된다. 즉 혼인 전부터 보유한 고유재산이나 혼인 후 증여 내지 상속으로 일방이 취득하게 된 특유재산이라도 결혼 기간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배우자 사망 시에는 결혼 기간에 상관없이 상대방의 모든 재산이 상속재산에 포함된다. 외국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전계약이 사용된다. 우리도 이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데도 현행 민법의 혼전계약 제도는 이런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유명무실한 제도다.
법무부는 이 혼전계약 규정은 손도 대지 않고, 배우자 상속분을 대폭 확대하는 개정안을 제시한다. 최소한 배우자에게 남겨야 할 상속분(유류분)에 대해 외국에서는 혼인 중 형성한 부부 공유재산의 3분의 1 내지 2분의 1 범위 내에서 인정되고 있다. 결혼 기간이나 미성년 자녀 유무에 따라 그 비율을 달리하고 있고, 배우자가 충분한 자력이 있거나 생전에 미리 재산을 분배받았을 경우에는 감축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고유재산에 대해서는 배우자의 상속권을 배제하는 혼전계약이 인정되고 있다.
법무부의 개정안은 배우자 상속분에 대해 이미 할증된 법정상속분이 있는데도 전체 상속재산에서 선취분 50%를 배우자의 몫으로 추가 인정하고 유언으로써도 배제를 못하게 하고 있다. 이는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고, 가족관계의 갈등과 분쟁을 심화시키며 혼인에 대해 지나친 부담을 준다. 혼인 기간과 상속재산의 성격, 사전 재산분배 여부 등 다양한 요소는 고려하지 않고 법률에서 일률적으로 배우자 상속분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분쟁을 법원에서 해결하게만 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다.
분쟁을 사전에 막고 각자 고유재산을 보호하려는 시대적 수요와 다양해진 혼인 형태에 적합하게 보완된 혼전계약 제도를 민법개정안에 포함해야 한다. 이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혼인관계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