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 사회부 차장
외계인인 그의 능력은 평범한 지구인에겐 그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그는 지구에 있는 400년 동안 능력을 숨기며 살아야 했다. 가끔씩 교통사고 등 위기에 빠진 지구인들을 몰래 돕는 것 외에는.
드라마를 보면서 꿈꿔봤다. 내가 도민준이라면….
그들이 집세와 공과금이라며 봉투에 넣어 놓은 70만 원은 그들의 심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렸다.
그들은 아마 그런 얘기를 나눴을 것이다. ‘세상을 등지더라도 남에게 폐는 끼치지 말자.’ 그런 후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을지 모른다.
내가 도민준이었다면 아마 뛰어난 청력을 이용해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시간을 정지시켜 놓고 공간이동 능력을 이용해 자살 직전인 그들의 방으로 뛰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그들의 외롭고 힘든 삶의 얘기들을 들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도민준이 심리학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니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설사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그들에겐 큰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생활고에 지친 ‘복지 사각지대’의 사람들에겐 물론 돈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복지 대상자를 위주로 짜이지 않고 부정수급을 막는 데 더 신경을 쓰는 복지제도는 정작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을 더 큰 절망의 낭떠러지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렇다고 선거 때마다 나오는 무상복지 시리즈나 기초연금 공방이 복지의 본질인지는 의문이다. 급식의 질을 떨어뜨려서라도 막대한 돈을 들여 무상급식을 하거나 노인 인구 몇십 %에게 20만 원을 쥐여준다고 해서 과연 필요한 복지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엔 버스 무료승차 공약까지 나왔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헬기에서 돈을 쏟아붓듯 복지를 할 순 없다.
아쉽게도 도민준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은 없었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을 지금 되돌릴 순 없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수십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니 도민준 혼자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절망과 좌절을 닦아주려면 도민준 같은 초능력이 없는 평범한 지구인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경기도에서 수년간 해오던 ‘무한 돌봄’ 서비스가 그나마 ‘찾아가는 복지’ 개념으로 진행돼 오던 것인데,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서울 등 다른 지자체들도 찾아가는 복지를 표방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단발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복지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서정보 사회부 차장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