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사회부장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도 오사카지검의 예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공수사 지휘라인의 개입 여부에 검찰 수사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고, 수장(首長)인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퇴진 문제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사태는 국정원의 위기 수준이 아니라 ‘국정원 붕괴’란 말이 더 적절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정원의 위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하다. 하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재판 증거가 위조됐다는 점에서 대공수사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점이다. 또 다른 위기는 이번 사건의 여파로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돼온 대북(對北) 정보망이 일거에 붕괴될 상황에 빠졌다는 데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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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위기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공수사 신뢰의 위기는 그나마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인적 쇄신, 검찰 지휘의 강화 등 나름의 대안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 문제다. 반면 대북 정보망의 붕괴는 단기간에 회생이 어렵다는 점과 유사시 안보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의 정보망은 북한에 급변 사태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할 전략적 핵심정보 수집의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세계 3대 첩보전장의 한 곳으로 꼽히는 북-중 접경지역 일대는 각국의 이른바 ‘블랙요원’들이 치열한 첩보전을 벌이는 곳이다. 지난해 북한의 장성택 숙청사태 때에도 이곳에선 북한 고위층이 핵개발 정보를 갖고 망명했다는 등의 설을 확인하기 위해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총출동했다. 중국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2011년 7월 국정원 간부 2명이 현지 중국인을 고용해 대북정보를 수집하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구금된 일도 있고, 2012년 2월엔 중국 공안의 첩보원들이 탈북자 행세를 하며 탈북자들을 적발해내 수십 명이 북송된 사건도 있었다. 남북 간의 정보전이 뜨거워질 때마다 중국 공안은 우리 블랙요원들을 색출해내 강제 추방한 예도 허다하다.
역사적으로도 20세기 초 열강이 각축전을 벌일 때,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곳은 총성 없는 정보 전쟁이 뜨거웠던 곳이다. 일제의 밀정들이 활개를 쳤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 첩보원들은 일본의 군사 동향을 수집하며 저항했다.
바로 이곳에서 이번 사건으로 국정원이 조롱을 당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위기의 파도가 이미 국정원 안방까지 밀어닥쳤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이를 얼마나 지혜롭게 잘 수습하느냐는 더욱 중요한 문제다.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한국의 정보기관이 더이상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길을 심모원려(深謀遠慮)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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