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이제, 져도 웃을 수 있다”
○ 월드컵은 언제 어디서든 가슴을 뛰게 한다.
13년 동안 대표팀에서 뛴 이영표는 월드컵에 3회 연속 출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이었으며 2006년 독일 대회를 거쳐 2010년 남아공 대회 때는 사상 첫 방문 16강을 이끌었다. 올해 월드컵은 TV 해설자로 현장을 지킨다. 설 연휴에 그는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한국과 멕시코의 평가전 해설을 처음 맡았다. 한국은 0-4로 완패했다. A매치를 127차례나 뛴 선배는 후배들을 향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가를 내걸고 하는 경기는 그 자체가 역사다. 0-3과 1-3은 다르다. 대표선수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따뜻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월드컵은 부담스럽다. 나 역시 그랬다. 잘하면 좋지만 안 좋으면 역적이라도 된 듯한 분위기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이영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월드컵 16강 진출은 당연하다고 느낀다. 외국에서 보는 한국은 다르다.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유지하며 미스터리 같은 한국의 특별한 능력을 기대해 보면 어떨까”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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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뛰어도 함께 간다
이영표가 말하는 지도자의 기본 요건은 리더십. “선수들의 마음을 얻고 존경받는 게 중요하다. 전술은 그 다음이다. 언행이 모범을 보이고 진실해야 한다. 사회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2002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이영표는 대회 개막을 이틀 앞두고 종아리 부상으로 6주 진단을 받았다. “회복까지 3개월이 걸린다고 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히딩크 감독이 나를 불렀다. ‘1년 반 동안 고생했는데 너를 버리지 않겠다. 못 뛰어도 같이 간다’고 하더라. 전담 치료사를 1주일 내내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내게 붙여줬다.” 이영표는 이런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영표의 해외 진출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입성이 히딩크 감독 없이는 성사되기 힘들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후배 박지성(33)은 동반자 같은 존재다. “낯설고 말도 안 통하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서 지성이와 뛰며 의지가 되고 큰 도움이 됐다. 내 룸메이트였고 방문경기 때 버스에서도 늘 옆자리에 앉았다.” 박지성의 브라질 월드컵 대표 선발 문제는 뜨거운 감자. 이영표도 박지성뿐 아니라 홍명보 감독과의 친분 관계를 고려해 섣부른 의견 제시는 피했다. “지성이나 명보 형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면 언급하지 않는 게 낫다. 그래도 선수 본인의 결정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 새로운 꿈★도 이뤄진다.
이영표는 캐나다에서 북미 메이저리그축구(MLS)를 중심으로 선진 스포츠 산업을 공부할 계획이다. “오랜 세월 해외에서 뛰면서 축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리그 운영, 비즈니스 등 모든 분야가 성장해야 축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MLS에서 뛰면서 놀란 경험이 있다. 전반에 한 골을 먹은 순간 해당 감독을 TV 생중계로 인터뷰하더라. 거액의 중계권 계약을 한 만큼 철저하게 시청자 위주였다. 유럽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MLS는 관중 동원에서 북미 4대 프로스포츠 중 하나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이 축구 자체에 집중한다면 미국은 다양한 볼거리로 축구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경기 시간, 중계, 마케팅 등 모든 게 팬 위주다. 문화 차이가 있지만 신선했다.”
이영표의 시선은 지도자 육성에도 깊숙이 꽂혀 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지도를 받으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축구는 의외로 간단하다. 뛰어난 초중고 지도자들을 만드는 것이 한국 축구의 시급한 과제다. 대표팀을 강화하려면 풀뿌리부터 잘 길러야 한다. 축구 공부는 일본이 잘하는데 시험은 한국이 잘 본다는 얘기가 자랑은 아니다.”
이영표의 좌우명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한 자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성경 구절. “내 목표는 겸손이었다. 그런데 그 자체가 교만이더라. 내가 영원히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축구를 즐기지 못한 적이 있다. 축구의 목적이 즐거움에서 이기는 걸로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이젠 축구를 하다 져도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영표와의 대화는 어느새 사각의 그라운드를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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