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두 건축가-김주영 조명디자이너 부부가 오감예술로 사는 법
건축가 안경두 씨(왼쪽)와 조명 디자이너 김주영 씨는 남편과 아내, 같은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건축가와 조명 디자이너, 레스토랑의 공동 운영자라는 3가지 관계를 가지고 있다. 16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내 ‘테이스팅룸’ 4호점에서 만난 부부는 자신들이 직접 만든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남자: 안경두(44). 미국 예일대, 하버드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2004년 ‘비안디자인’ 건축사무소를 설립. 현재 건축설계사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 중.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센터와 SBS 신사옥, 홍익대 인근의 YG 사옥, 강남구 청담동 씨네시티 멀티플렉스 등의 실내 디자인을 맡았음.
◇여자: 김주영(38).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조명 디자인을 전공. 조명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안 씨와 결혼해 함께 ‘비안디자인’을 이끌고 있음. 안 씨가 만든 공간에는 늘 김 씨의 조명 작품이 전시됨.
토마토 스튜에 미트볼과 달걀 노른자를 넣은 스튜요리.
이들은 요리를 설계하는 걸까, 디자인하는 걸까. 건축과 디자인, 그리고 요리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내 테이스팅 룸 4호점에서 만난 부부는 “세 가지 모두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요리를 예술로 만들어 사람들을 감동시키겠다”는 두 사람의 ‘창조 음식론(論)’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 ‘창조음식’은 50개 실험하다 40개 버리면서 건지는 ‘작품’ ▼
Scene#1… 건축가의 요리, 조명 디자이너의 와인
건축 설계와 조명 디자인 일을 하면서도 부부는 요리라는 공통 관심사를 갖고 대화를 나눠왔다. 관심사를 취미로만 놔둘 수 없어 이들은 직접 개발한 음식을 기반으로 5년 전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 소재는 대부분 음식이었다. 어느 날 안 씨와 김 씨는 함께 TV를 보던 중 소스를 시험관에 넣어 음식에 뿌리는 특이한 요리사가 있는 시카고의 한 레스토랑을 보게 됐다. 두 사람은 바로 휴가를 내고 4박 5일 일정으로 시카고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안 씨는 “훗날 우리가 함께 레스토랑을 차리면 시카고의 그 레스토랑처럼 특이하게 공간을 꾸며 보자”고 김 씨에게 얘기했다. 와인에 관심이 많던 김 씨는 이후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안 씨가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짝지어 주고 싶어서였다.
요리와 와인의 최적 조합을 찾던 이들은 2003년, 만난 지 2년 만에 서로에게 최적의 짝이 됐다. 이듬해 귀국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건축 사무소 ‘비안디자인’을 냈다. 5년 동안 본업에 충실하던 이들은 2009년 드디어 회사 1층의 비어 있던 공간을 개조해 레스토랑을 냈다. 가게 이름은 테이스팅룸으로 지었다. 해외 유명 와인 공장에서 방문객들이 와인과 음식을 즐기는 공간을 뜻한다. 부부의 테이스팅룸은 건축가 남편이 개발한 요리, 조명 디자이너 아내가 고른 와인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부부가 직접 디자인한 레스토랑의 천장 조명.
블로거들의 공통된 의견 중 하나는 “그곳에 가면 신기한 메뉴가 많다”는 것이다. 대표 메뉴인 ‘돼지고기 삼겹살 파스타’는 너구리 라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라면처럼 꼬불꼬불한 푸실리 룽기(나선형의 파스타 가닥)를 삼겹살과 버무려 만든 퓨전 음식이다. 이 외에도 라사냐를 수제비처럼 뜯어서 소스에 버무린 ‘수제비 범벅’과 해산물이나 닭고기 대신 프라이팬에 구운 곱창을 넣어 만든 볶음밥 ‘곱창 잠발라야’, 베이컨과 시금치를 올려 만든 ‘시금치 플랫 브레드’ 등 실험적인 메뉴가 상당수다. 맛에서도 단순한 짠맛이나 매운맛 등 2차원적인 접근보다는 쫄깃함이나 바삭함 같은 입체적인 느낌이 주로 나타났다.
“‘예쁜 것이 아닌 특이한 공간을 만들자’는 우리 건축 사무소 구호처럼 음식도 특이한 메뉴로 승부를 보고 싶었어요. 맛있는 음식은 어딜 가도 있으니까요. 다른 레스토랑에서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사람들에게 주자는 취지로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 디자인과 요리의 접점이고요.”(안 씨)
“우리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참 기쁘더라고요. 내가 디자인한 공간을 의뢰인이 보고 고맙다고 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거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요리도 예술이라 생각합니다.”(김 씨)
Scene#3… 창조 음식? 50개 만들면 40개는 버려야 얻을 수 있는 것
사과에 절인 고기를 넣은 오믈렛(왼쪽), 그리고 크리스피 베이컨과 옥수수 팬케이크.
그래도 그냥 흔한 곱창전골을 만들 수는 없다. 곱창 잠발라야를 내놔야 직성이 풀린다. 계속 ‘창조 음식’에 도전하는 이유를 묻자 안 씨는 “숨길 수 없는 예술가의 ‘곤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남편의 얘기에 아내 김 씨는 “요리를 예술 작품이라 생각하는 우리에겐 ‘당신들 음식이 제일 특이하다’라는 말이 곧 칭찬”이라고 했다.
창조 음식 만들기에 몰두하다 보니 본업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안 씨는 “그전에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 치장을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면 외식업에 뛰어든 뒤에는 좀 더 대중적인 감각이나 사람들이 원하는 스타일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실험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테이스팅룸 외에 다른 스타일의 레스토랑도 내고 이를 브랜드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남편과 아내로, 건축가와 조명 디자이너로, 레스토랑 공동 운영자로… 부부는 하루 종일 붙어 있지만 다투는 일이 거의 없다. “감성적인 나에게 이성적인 아내가 없었다면 일이고 요리고 다 망했을 것”이라는 안 씨의 얘기에 김 씨는 “남편이 가진 장점을 믿으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어느덧 서로에 대한 배려를 함께 ‘요리’하고 있었다.
글=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