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글로벌 전기차 시대… 한국 홀로 제자리]전기자동차 후진국

입력 | 2013-10-07 03:00:00

급속충전기 전국에 고작 117개… 전기차 시장 방전될라




전기차에 쏠린 관심… 30대 예약에 150명 몰려 경남 창원시민들이 3일 오전 창원시 의창구 두대동 창원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전기자동차 비교 시승회에 참석해 행사 관계자들로부터 전기차의 구동 원리와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창원시는 7∼16일 민간 기업 및 개인들로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는다. 창원시 제공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두대동 창원스포츠파크에 창원 시민 200여 명이 모였다. 창원시가 마련한 전기자동차(기아자동차 ‘레이EV’, 르노삼성자동차 ‘SM3 Z.E’, 한국GM ‘스파크EV’) 비교 시승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창원시는 7∼16일 민간 기업 및 개인을 대상으로 전기차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구매 기업 및 개인에게는 대당 2100만 원의 보조금(환경부 1500만 원, 경남도 300만 원, 창원시 300만 원)을 준다. 150여 명(기업 포함)이 비공식적으로 구매 의사를 밝혔지만 판매 차량은 30대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도 마찬가지다. 제주도는 2300만 원(환경부 1500만 원, 제주 800만 원)을 할인해주는 조건으로 6월 27일부터 7월 26일까지 도민들을 대상으로 전기차 구매 신청을 받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제주도민 및 기업들은 총 487대(기업은 3대까지 신청 가능)를 신청했다. 그러나 제주도는 추첨을 통해 160대의 예약만 받았다. 장철원 제주도 스마트그리드과 주무관은 “올해 전기차 구매보조금에 배정된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연내 (160대 이외의) 추가 지원은 힘들다”고 말했다.

국내 전기차 시장도 신규 모델이 속속 나오면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일반인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나 급속충전소 같은 인프라는 해외 국가들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지적이다.

○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

전기차 시장 확대의 가장 큰 장벽은 여전히 높은 가격이다. 동급 가솔린 및 디젤모델보다 2∼3배 비싸기 때문에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구매를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 소극적인 정부 지원 정책으로 인해 국내 전기차 시장의 형성이 늦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환경부는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보조금’ 명목으로 지난해 573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그러나 올해 이 예산은 작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76억 원으로 삭감됐다. 환경부는 ‘2014년 예산안’을 짜면서 올해와 같은 규모의 예산을 책정했다.

기아차 ‘레이EV’가 나온 2011년 1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국내에서 팔린 전기차는 모두 1091대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에도 약 1000대씩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와 창원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기차에 대한 수요는 크게 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도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르노삼성과 한국GM이 이미 신차를 내놓았다. 내년 상반기(1∼6월)에는 기아차 ‘쏘울EV’와 BMW ‘i3’가 출시될 예정이다. 박광칠 환경부 전기차 보급추진 태스크포스(TF) 팀장은 “올해 상황을 보면 전기차 시장이 열리는 것은 기정사실화한 것 같다”며 “그러나 전기차 산업이 얼마나 빨리 성장할지는 어느 기관도 정확한 예측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


급속충전소 등 인프라 부족도 전기차 시장 확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내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려면 ‘충전소가 없어 도로 한가운데에 서 버릴 수도 있다’는 소비자의 불안감부터 해소해야 한다.

환경부가 보급한 급속충전기는 9월 말 현재 117개다. 서울이 29개로 가장 많고, 제주가 22개, 경남과 충남이 10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대구 대전 울산 강원 등은 각각 1개에 불과하다. 개당 4000만 원인 이 충전기는 레이EV만 사용할 수 있다. 환경부는 연내에 레이EV와 SM3 Z.E를 함께 충전할 수 있는 급속충전기 80개(개당 5000만 원)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당장 내년부터 기아, 르노삼성, 한국GM, BMW 등 4개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경쟁을 펼치게 됐지만 충전소 부족 문제는 예산 문제로 당장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지원 속도가 더뎌지자 BMW는 아예 5, 6개 기관 및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i3 전용 충전소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김효준 BMW그룹코리아 사장은 “국내 인프라 확충 속도는 너무 느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대형 유통업체 등과 충전사업 추진을 논의하고 있으며 i3 출시 전에 결론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 외국은 인프라 구축 가속화

2010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15개국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전기차 이니셔티브(EVI·Electronic Vehicle Initiative)’란 리더십 포럼을 만들었다. 이들 15개국은 적극적인 정부 지원에 힘입어 세계 전기차의 90% 이상을 보급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EVI에 가입돼 있지 않다.

미국은 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과 전기차 리스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해 2015년까지 100만 대를 판매하는 게 목표다. 독일은 2020년까지 전기차 1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하면서 관련 연구개발(R&D)에 170억 유로를 투자하기로 했다. 프랑스도 향후 5년간 전기차 10만 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4월 발표한 ‘2013 세계 전기차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EVI 회원국에 설치된 저속충전기와 급속충전 설비는 각각 4만2462개와 1907개였다.

2009년 닛산 ‘리프’가 시판된 뒤 가장 빨리 전기차 시장이 형성된 일본은 지난해 말까지 급속충전기만 1381개가 설치됐다. 한국의 약 12배 수준이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급속충전기 5000개와 저속충전기 200만 개를 보급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는 “아파트 위주의 국내 주거환경에서는 완전 충전까지 5∼6시간이 걸리는 저속충전기 활용도가 낮다”며 “정부 주도로 급속충전기를 포함한 인프라 확충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은 전기차 시장의 후진국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창덕·이진석 기자 drake007@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