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최인호 선생을 추모하며본인의 ‘가족’얘기 글로 묘사… 일상속에 있는 문학 깨닫게해 김수환 추기경-법정스님 만나 못다한 얘기 나누고 계신지…
정호승 시인
아직 써야 할 소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나자렛 마을에 살던 2000년 전의 청년 예수 이야기도, 여든 넘게 그림을 그리면서 끊임없이 정열적으로 여자를 사랑했던 화가 피카소 이야기도 최인호 선생만의 새로운 관점에서 재미있게 써야 하는데, 이제 그만 소설가로서의 펜을 놓고 말았으니 이 어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있으랴.
1970년대 말에 최인호 선생이 월간 샘터에 연재하던 소설 ‘가족’을 매달 교정보고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 처음 선생을 만나던 때가 정말 엊그제 같은데, 어찌 인생이라는 시간은 이리 빠르고, 선생마저 이렇게 죽음이라는 긴 여행을 떠나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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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가족’의 최초 독자인 나는 늘 선생의 아드님인 도단이와 따님인 다혜와 함께 사는 듯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선생은 가족의 일상사를 세세하게 끄집어내어 글을 썼다. 일상 속에서 무엇을 발견해 내느냐 하는 것이 글쓰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상의 삶 속에 진정 문학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선생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서부터 인간의 모든 사랑은 시작된다는 것 또한 내겐 큰 가르침이었다.
선생은 후배들에 대해 사랑이 많으셨다. 내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을 때는 일부러 전화를 주셨다.
“소설이 당선되었다니, 정말 축하해. 열심히 써. 이제 넌 내 후배야. 시인이 소설가가 되려면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어.”
선생의 말씀과는 달리 나는 소설을 쓰지 못하고 말았지만 그때는 당대 최고의 소설가가 직접 내게 축하 전화를 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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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선생님! 이제 그곳에서 ‘길 없는 길’을 찾으셨는지요.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 하고 껄껄껄 호방하게 그 유머 넘치는 웃음을 다시 터뜨리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어쩌면 선생님이 가신 천국이야말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일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작은 나무 책상 하나 마련하셔서 천국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죄다 소설로 써서 보내 주세요. 그러면 이곳 출판사들이 분명 다투어 출간해 드릴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랑하는 선생님을 떠나보낸 그 많은 독자들이 더이상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