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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저 좀 봐줘요”… 삶의 구석진 곳을 향한 작가의 시선

입력 | 2013-09-14 03:00:00

◇별명의 달인/구효서 지음/296쪽·1만2000원/문학동네




등단 26년째를 맞는 작가의 여덟 번째 소설집이다. 감정을 절제한 정갈한 문장으로 타인과의 관계 맺기, 나와 다른 삶과의 공존이라는 주제의식을 드러낸 단편집이다. 2008년 가을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문예지에 실린 단편 8편을 엮었다.

작가가 출근하듯 도서관에 나가 매일 예닐곱 장씩 써내려갔다는 수록 작품들은 유한하고도 불가해한 삶에 대한 성찰과 그 의미에 대한 자기질문의 기록이기도 하다. 전작 소설집에서 두드러졌던 죽음과 소멸의 이미지가 신작에는 많이 누그러진 느낌이다.

표제작 ‘별명의 달인’에서 주인공은 아내가 갑자기 집을 나간 뒤 옛 친구를 찾아간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본질을 꿰뚫어 꼭 맞는 별명을 지어줬던 친구다. 주인공은 이 친구를 만나면 아내가 자신을 떠난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지만, 친구 역시 아내가 ‘베아뜨리체’라는 별명을 버리고 떠나버려 홀로 남겨져 있다. 타인에 대한 자기중심적 이해와 규정에 대한 반성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비슷한 음악 취향으로 최소한의 유대를 확인할 뿐 서로 말을 섞지 않는 90대 아버지 김옹과 50대 아들 봉한의 묘한 부자 관계를 다룬 ‘바소 콘티누오’는 외면하는 것도, 마주보는 것도 아닌 그 중간지대 어디쯤의 어정쩡한 유대 관계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온 e메일을 제목만 읽고 지우는 남자의 이야기 ‘화양연화’, 애증관계에 있던 남편을 교통사고를 가장해 살해하려다 사랑하는 딸까지 잃고 무너져버린 여자의 이야기 ‘저 좀 봐줘요’에서도 우리 삶의 그늘진 구석을 향한 작가의 깊이 있는 관찰과 사유가 느껴진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