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개 경제단체 “상법 개정안 전면 백지화” 정부에 요구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22일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 기자회견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계가 상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분위기다. 상반기(1∼6월)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한 경제민주화 입법, 남양유업 파문으로 확산된 ‘갑을(甲乙) 관계’ 논란에 제대로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당한 것과는 사뭇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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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 등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나 일감 몰아주기처럼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있는 행위를 규제하는 상반기 이슈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재계를 결집시키는 요인이다.
○ ‘보완’ 아닌 ‘전면 백지화’ 요구
가장 문제라고 보는 내용은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선임할 때 대주주 측 의결권을 주주별로 최대 3%로 제한하는 것이다.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를 견제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이지만 재계는 이 조항이 시행되면 헤지펀드 등 외국계 투기자본이 지분을 3% 이하로 쪼개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극대화해 국내 알짜 기업의 경영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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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이 일정 규모 이상인 상장회사에 대해 집중투표를 의무화하는 조항에 대해서도 재계는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러시아, 멕시코, 칠레밖에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에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재계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할 경우 2006년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에서 했던 것처럼 외국 투기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고 단기간에 이익을 챙긴 뒤 한국을 떠나는 일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 기업 옥죄기, 국민경제에 도움 안 돼
상법 개정안 중 집행임원 분리 선임 제도는 상장회사에 이사회와 별도로 회사 업무 집행을 전담하는 임원을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업무 집행 기능을 떼어준 이사회는 경영진을 제대로 감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재계는 “이사회와 집행임원의 갈등으로 경영 효율성을 해치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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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제가 되는 다섯 가지 조항은 모두 2011년 상법을 개정할 때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결론이 내려졌던 사안”이라며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도록 해야 할 시점에 다시 기업을 옥죄는 것은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통상임금과 화학물질등록법에도 적극 대응
현재 재계와 노동계는 통상임금에 고정 상여금 등을 포함시키는 것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법원의 판단도 엇갈려 다음 달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한다.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고정 상여금 등이 포함된다는 최종 판단을 내리고, 이에 따라 각 사업장 노조가 줄소송을 제기하면 기업들은 최대 수십조 원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5월 국회를 통과해 2015년부터 시행될 화평법은 지금까지 등록의무가 면제됐던 연구개발(R&D) 목적 또는 연간 100kg 미만을 사용하는 소량 화학물질까지 등록하도록 했다. 재계는 “모든 화학물질을 등록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비용 부담도 크다”며 화평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