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고노담화 이끈 이시하라 前 관방副장관
20년 전 발표된 고노 담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시하라 노부오 전 관방부장관. 올해 87세인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말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과거의 기억을 되짚었다. 표정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1991년 12월) 한국 위안부가 일본 재판소에 사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1965년 한일협정의 부속협정인 청구권 협상에서 모든 손해배상 문제가 끝났다는 것이다. 재판소도 그런 취지로 소송을 기각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위안부의 존재와 사실관계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야자와 내각은 요청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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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 관방부장관이었다. 각 성청에 위안부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고 자료를 취합했다. 성청뿐 아니라 도도부현(都道府縣)과 미국 등 해외의 문헌까지 모았다. 그리고 취합한 자료를 최종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결과는 어떠했나.
“위안부의 존재가 명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92년 7월) 조사 결과에 기초해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관방장관이 위안부의 존재와 당시 환경 등을 발표했다.”
가토 담화는 일본군이 위안소의 설치와 운영, 차량을 이용한 위안부 이송 등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담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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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지령, 연락 문서 등을 모두 살펴봤지만 군이나 관헌이 위안부의 뜻에 반해 강제적으로 모집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었다. 그래서 가토 담화에 ‘뜻에 반한 강제 모집’이란 내용은 담지 않았다.”
―한국의 반응은 어떠했나.
“한국 정부는 강제 동원을 인정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문서가 없기 때문에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게 한국 정부의 주장이었다. 미야자와 내각은 어떻게 할지 논의했다. 문서 외에 위안부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보자고 결론 내렸다.”
―어떤 증언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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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의 조사팀은 한국인 위안부 16명 외에도 군인, 조선총독부 관계자, 위안소 경영자, 위안소 부근의 거주자 등에게서도 증언을 들었다.
―하시모토 시장은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는 변호사다. 소송은 객관적인 자료에 기초해야 한다. 증언은 소송에서 참고로 활용할 수 있지만 증거로 사용하진 않는다. 사실 위안부 증언을 들을지 고민할 때도 정부 내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미야자와 내각은 (증언을 증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과거 문제로 일한(日韓) 관계가 발전할 수 없다. 당시 고노 담화를 내놓은 의도는 정부 차원에서 사과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그 후 일한 관계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으로 나아갔다.”
―지금도 극우 인사들은 ‘증거가 없는데 강제동원을 인정했다’고 비판하면서 고노 담화를 부정한다.
“일국의 정부가 ‘본인 뜻에 반해 (위안부를) 모집하라’는 문서를 낼 리가 있겠나. 어느 국가든 마찬가지다. 강제동원 문서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군이나 정부가 직접 위안부를 모집하지 않았다. 민간 업자에게 돈을 주고 위안부를 모집했다. 민간 업자 레벨에서 감언, 강압 등이 있었다는 게 위안부들의 증언에서 나왔다. 그걸 인정할지 말지가 관건이었는데 피해자의 처지에서 증언을 받아들여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한 게 고노 담화의 포인트다.”
―아베 총리도 ‘강제연행을 직접 지시하는 문서는 없다’는 부분만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의 증언을 들은 결과 고노 담화가 나왔다.”
―고노 담화는 ‘정치적 타협’이라는 극우의 주장도 있다.
“고노 담화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나는 사실만을 말할 뿐이다. 당시 미야자와 내각은 미래지향적인 일한 관계 구축을 위해 위안부 증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치적 타협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평가 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뭐라 말할 게 없다.”
고노 담화를 대체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현 관방장관의 담화가 나올 가능성,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극우들의 의도 등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사실에 대해 말할 뿐 평가나 예측은 하지 않는다”며 답을 피했다.
―요즘 한일 관계가 좋지 않다.
“한국과 일본은 2000년, 3000년 깊은 역사가 있다. 싸운 적도 있고, 도운 적도 있다. 불행히도 최근에는 약 100년간의 불행한 역사만 강조되고 있다. 그 이전 좋았던 때는 회자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 모두에서 내셔널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결책이 없나.
“역사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근현대사를 잘 가르치지 않는다.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의 식민지배 사실조차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 선거를 의식하는 정치인은 어쩔 수 없지만 언론은 냉정한 보도를 해 달라. 요즘 한일 언론 모두가 상대 국가의 부정적인 면만 너무 부각해 보도한다.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차분히, 냉정히 보도해 달라.”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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