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방법인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실패한 경영자를 보호하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모두 108곳이다. 2008년 110건이었던 법정관리 신청은 지난해 268건으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기업 구조조정은 채권단이 주도하는 재무구조개선약정(워크아웃)과 법원이 이끄는 법정관리가 있다. 그중에서 법정관리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워크아웃보다 법정관리를 선호한다. 워크아웃이 금융권 채무만 감면받는 데 비해 법정관리는 비(非)금융권 채무까지 동결되기 때문이다. 경영상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일일이 채권단의 간섭을 받을 필요도 없다. 2006년 통합도산법이 제정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대주주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법정관리의 선호도가 더 높아졌다. 지난해 웅진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도 윤석금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제도를 남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자들은 큰 피해를 본다. 돈을 빌려준 은행은 물론이고 부품을 납품한 협력업체나 회사채를 산 일반 채권자들도 빚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신용등급이 우량등급 ‘A’였던 웅진홀딩스가 수천억 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한 후 갑자기 법정관리를 신청해 회사채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 펀드를 통해 채권을 구매한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멀쩡한 다른 기업들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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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 가능성이 높은데도 경기 침체로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을 구조조정해 살리는 작업은 필요하다. 다만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면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있는 요건을 지금보다 까다롭게 해야 한다. 기존 경영자를 법정관리인으로 앉히는 ‘기존 관리인 유지’ 제도에 엄격한 조건을 달아야 한다. 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에 대해 채권단과 회계법인이 공동으로 실사하도록 해야 한다. 시장에서 기업 구조조정은 불황기만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기업 인수와 합병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워크아웃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