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검증열풍에 편승한 대학가 악용사례 급증
○ 표절 검증 못해 전전긍긍하는 대학들
당사자는 사과를 했지만 정작 대학은 아직까지도 표절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건국대 측은 “논문 발표 시기가 너무 오래전의 일이다. 또 외부위원들이 참여하기를 고사해 조사위원회 구성 자체가 불발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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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문대성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국민대 박사 학위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파장이 커지자 국민대는 4월 초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12월 “표절 가능성이 높다”는 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문 의원은 결과에 불복해 이의 신청을 냈다.
문제는 그 후 학교의 대응에 있었다. 처리 방식조차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검토 중이긴 하지만 조사 기한을 못 정했다. 학교 규정에 따른 정교한 처리 절차가 없어 난감한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국내에서 유명인 표절 검증은 주로 언론이 주도한다. 하지만 몇몇 사례만 보더라도 최종 검증 책임이 있는 학교는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 해당 논문이 표절인지 여부는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선진국은 어떨까. 언론 검증과 별개로 학교 검증은 매우 엄격하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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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선 표절 검증 3단계 절차를 갖추고 있다. 일본에서도 ‘과학자 행동규범’에 따라 대학 및 연구기관에 부정행위 방지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정부 연구비 지원 관련 논문 부정을 신고하는 창구까지 개설했다.
○ 표절 공세로 멍드는 상아탑
학내 표절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상아탑은 무분별한 표절 공세로 멍들고 있다.
학교에는 학내 파벌, 이해관계에 따라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일단 상대방이 표절했다는 제보가 넘친다. 총장 선거, 보직 배정 등 굵직한 이슈를 앞두고는 표절 관련 음해성 투서가 빗발친다. 이 때문에 죄 없는 피해자가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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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바로 반박 자료를 냈다. 몇몇 공인된 정의를 공통적으로 서술했을 뿐 내용이 전혀 다르다고 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더 커지자 이화여대는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열었다. 지난달 18일엔 ‘자기표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최종 결과를 통보했다.
최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불과 한 달 만에 만신창이가 됐다”고 했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음해하는 투서를 보냈다. 이를 언론사가 받아 검증조차 없이 내 이름을 그대로 보도해 나를 낭떠러지로 몰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언론사에 대해선 “길고 고독한 싸움이 될지라도 마녀사냥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2011년 12월엔 한 우편물이 부산 한국해양대에 배달됐다. 이 대학 6대 총장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박한일 해양공학과 교수(55)가 논문을 표절했다는 투서였다.
한국해양대는 연구윤리위원회 소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검증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총장 임용 시점이 늦춰지는 등 대학이 혼란 속에 빠졌다.
정밀 실사를 한 뒤 위원회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연구윤리 강령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사람이 임용을 앞둔 총장 후보를 음해하기 위해 보낸 투서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박 교수는 총장으로 임용된 뒤에도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는 주변에 “‘아니면 말고’식 투서로 인해 ‘표절 교수’로 낙인찍혔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최근 서울의 모 사립대에선 신랄한 폭로전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당사자는 같은 학과에서 꽤나 잘나간다는 두 교수. 첫 번째 펀치는 A 교수가 날렸다. B 교수의 논문이 표절이란 주장. B 교수도 가만있지 않았다. A 교수가 쓴 논문을 샅샅이 파헤쳐 비슷한 의혹을 제기했다.
폭로전이 꼬리를 물면서 제자들까지 상대 교수 논문 검증에 동원됐다. 폭로전은 법정까지 갔다. 결국 두 교수의 논문은 표절이 아니란 판정이 나긴 했다. 하지만 본인은 물론이고 학과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해마다 교수 채용 시기가 되면 130건가량의 제보가 쏟아진다. 이거 처리하느라 다른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표절에 대해 사회적으로 워낙 관심이 뜨거워 비상식적인 투서 하나도 무시하기 힘들다.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장치라도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