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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사랑의 동전(銅錢) 한 푼

입력 | 2013-05-06 03:00:00


사랑의 동전(銅錢) 한 푼
―김현승(1913∼1975)

사랑의 동전 한 푼
위대(偉大)한 나라에 바칠 수는 없어도,

사랑의 동전 한 푼
기쁘게 쓰일 곳은 별로 없어도,

사랑의 동전 한 푼
그대 아름다운 가슴을 꾸밀 수는 없어도,

사랑의 동전 한 푼
바다에 던지는 하나의 돌이 될지라도,

사랑의 동전 한 푼
내 맑은 눈물로 눈물로 씻어
내 마음의 빈 그릇에 담아
당신 앞에 드리리니……

사랑의 동전 한 푼
내 눈물의 곳집 안에 넣을 때,
이 세상의 모든 황금(黃金)보다도
사랑의 동전 한 푼
더욱 풍성히 풍성하게 쓰이리니…….


어떤 분이 생각난다. 그는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어렵사리 학업을 마치고 의사가 됐다. 그리고 결혼을 하자마자 신부와 함께 미국에 이민 가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삼십 년 가까이 의사로서 신망을 쌓으며 어지간하지 않은 부자가 된 것이다. 한국교포의 귀감으로 받들리는 그분께 몇 차례 식사를 대접받았다. 내가 한국에서 갓 나와서인지 향수에 젖은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어느 날 그가 모교인 시골학교에 당신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고 싶다 했다. “아, 좋은 생각이시네요!” 내 감탄이 끝나자마자 그는 몽상에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로또만 되면 그러고 싶어요.” “…….” 농담하시나? 참으로 겸허하신 분. 자기가 장학금을 희사할 만큼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아니면, 엄청난 규모의 장학금을 만들고 싶었거나. 작은 액수라도 건네면 어린 후배들에게 풍성히 쓰이련만. 그분 생각을 하면 그 대화가 먼저 떠오른다. 여러 좋은 추억을 선사한 분인데 죄송하게도. 로또보다 100만 배 실현성 있고 아름다운 게 십시일반이리라.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동창회 같은 자리에서 술만 마시지 말고 후배들을 위해 어여쁜 동전 한 푼을 걷으면 어떨까?

가난한 이가 자기의 노동으로 맑게 번 돈을, 마음 다해 건네는 동전 한 푼! 그 한 푼, 한 푼 동전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세상을 비추리!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