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빵이 어때서?/김학찬 지음/200쪽·1만1000원/창비
여자는 갑자기 눈앞에 다이아몬드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참 검소하게 입으세요”라며 남자를 치켜세운 여자의 관심은 이제 기업체의 업종과 규모에 쏠린다. 여자가 조바심을 낼 때쯤 남자는 말한다. “아버지와 함께 풀빵을 굽는데요.” ‘한방’ 먹은 여자의 멍한 표정.
김학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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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매력은 소재 선택에서 빛난다. 누구에게나 친근한 길거리 음식인 붕어빵과 다코야키를 파고들어 그 속에서 장인정신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다코야키를 굴리는 송곳을 다루기에 적합한 손은 무엇일까. “손가락이 길면서 손바닥이 너무 넓어서도 안 된다. 손바닥이 너무 넓으면 회전을 줄 때 손목에 조금씩 무리가 가고 다코야키를 오래 구울 수 없다.” 심지어 ‘나’는 손과 손목의 감각 발달을 위해 피아노 체르니 30번까지 연습한다.
“붕어빵의 맛은 꼬리가 결정한다” “다코야키는 한 알 한 알 같으면서도 다른 맛을 내야 한다”는 풀빵 명인들의 얘기도 흥미롭다. 음식 만화의 신세계를 보여준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부풀어 오르던 기대감은 마지막에 살짝 김이 빠진다. 붕어빵의 명인인 아버지와 다코야키의 떠오르는 신예인 나와의 대결 장면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 예선만 있고 결승은 건너뛴 느낌이랄까. 문어 없는 다코야키, 팥 없는 붕어빵을 씹은 느낌처럼 허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