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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고려로 계승-수·당과의 전쟁’ 한 구절도 언급 없어

입력 | 2013-04-26 03:00:00

■ ‘동북공정 굳히기’ 中 고구려 박물관, 말문 막히는 현장




5월 1일 지린 성 지안에 공식 개관하는 중국 최초의 고구려 박물관인 ‘지안 박물관’. 연꽃잎 8개를 붙인 모양의 지붕이 도드라져 보인다. 지안=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 “한당고국(漢唐古國)이라는 표현은 한나라와 당나라 시기의 옛 나라라는 뜻이지요.”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시가 10년의 준비 끝에 다음 달 1일 개관하는 고구려유물 전문 박물관인 ‘지안박물관’. 16일 이곳을 찾은 한국인 고구려사 전문가 A 박사는 박물관의 제1전시실을 ‘한당고국’으로 붙여 놓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구려가 중국의 옛 나라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A 박사와 함께 둘러본 박물관 곳곳에서 한국 학계가 우려했던 대로 사실상의 ‘왜곡’들을 상당수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박물관은 동북공정을 주도한 중국 학자가 대거 참여해 세워진 것으로 중국 최초이자 유일한 고구려 박물관이다. 때문에 한국 학계는 이 박물관 개관에 오랫동안 주목해 왔다. 이런 민감성을 반영하듯 박물관 건물은 수년 전에 완공됐지만 개관은 미뤄져 왔다. 》

○ ‘동북공정 주장 투성이’


박물관 중앙 로비에 세워진 유리판에 쓰인 ‘전언(前言)’은 “한무제가 고구려인이 모여 사는 곳에 고구려현을 설치해 현토군 관할 아래에 뒀다. 이후 기원전 37년 고구려 왕자 주몽이 고구려현내에서 고구려정권을 세웠다.”고 표현했다. 고구려가 건국 초기부터 한나라의 지배를 받았다는 소리로 중국 측의 주장일 뿐이다. 고구려는 한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건국했다고 한국 학계는 반박해 왔다.

제1전시실 설명 패널에는 “고구려는 중국 중앙 역대왕조로부터 책봉을 받았고 멸망 후에는 유민들이 한족과 기타민족으로 융합됐다”고 적었다. 또 “고구려는 건국 후 (한나라) 현토군에 속하기를 원했고 부단히 중원왕조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중원왕조는 고구려에 조복의책(朝服衣책·관원의 예복 및 옷과 두건으로 중원왕조가 속국에 내리는 것)을 내렸다”고 쓰여 있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고분 벽화인 ‘수렵도’ 옆에는 한나라 고분에서 발견된 ‘수렵도’를 아무 설명 없이 나란히 걸어 놨다. 당나라의 시선 이백(李白)이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고구려 춤을 보고 지었다는 내용의 시 ‘고구려’도 소개한다. 조공 책봉과 관련된 역사적 기록만을 추려내 연표로 정리해 뒀다. 고구려의 성립 발전 멸망 등 전 과정에서 고구려와 중국 중원세력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관련성 등을 집중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물관 전시패널에는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 또는 ‘고구려는 중원 국가의 속국’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동북공정의 핵심 내용은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었다.

반면 이 박물관에는 고구려가 수(隋) 당(唐)과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등 중원세력과의 투쟁을 통해 성장 발전했다는 등의 내용은 없었다. 역사적 사실이지만 중국 측에 불리한 내용들이기 때문이라고 동행한 전문가는 말했다.

○ 고구려 역사에 한반도는 없다(?)

A 박사는 가장 아쉬운 부분은 고구려 역사에서 한반도 관련 부분을 거의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구려의 수도는 서기 3∼427년에는 지안에 있었지만 그 후 평양으로 천도했으며 고구려는 668년 멸망 때까지 존속했다. 따라서 그 유적과 유물이 평양과 서울 일대에 많이 남아 있다. 충주에도 고구려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이 박물관에는 이런 부분은 빠져 있다. 고구려가 망한 후 발해와 고려가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설명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제1전시실 한 구석에 놓인 디지털 설명기계 속에서만 “고구려가 조선반도(한반도)로 들어가 조선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했고, 조선 전통문화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을 뿐이다.

A 박사는 “중국 역대 왕조는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가 아닌 외국의 역사로 분류했고 한반도의 역대 왕조는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기술해 왔다”며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도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소개했다”고 밝혔다.

○ 박물관은 8개 연꽃무늬 모양 형상화

이 박물관은 시 중심부인 젠서루(建設路)와 윈수이루(雲水路)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외관은 중국 전통의 풍수이념과 연꽃을 좋아하는 고구려인의 특성을 따 연꽃 잎 8개의 모양으로 세웠다. 건축 면적은 6459m²라고 입장권에서 소개했다. 1, 2층으로 나눠진 박물관은 △토기와 석기 등을 전시한 한당고국 △요동에서의 국가 발전을 소개하는 웅거요동(雄據遼東) △생활 유물을 전시하는 산지민풍(山地民風) △병장기를 전시하는 금과철마(金戈鐵馬)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 및 유물 등을 전시하는 상장유풍(喪葬遺風) △광개토대왕비와 관련한 유물을 전시한 호태왕비(好太王碑) 등 6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유물은 모두 1000여 점이다.

박물관 측은 유물 도록 등 설명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 국가 규정이라면서 관람객의 가방을 임시 보관소에 맡기도록 하고 사진 촬영이나 기록을 못하게 했다. 참관자가 한국인이면 경찰이 참관 내내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한편 지안의 광개토대왕비와 충주 고구려비에 이어 고구려 관련 세 번째로 발견된 지안 고구려비는 박물관 1층 로비 가운데에 전시돼 있다. 8각 유리관 속에 눈높이보다 높게 설치된 데다 고구려비 주변 1m가량은 통제선을 따로 설치해 비석의 글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안=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 [채널A 영상]‘동북공정’ 역사왜곡 중국 “고구려 성도 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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