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무슨 말인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올해 1월 40년 이상의 신문기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나는 한국의 동서대와 서울대에서 석좌교수와 객원연구원 자리를 받았다. 몹시 고마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완전히 녹슨 한국어를 한 번 더 배우고 싶었다. 그런 나의 소원이 이루어져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주선으로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배울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까지도 매년 한국을 방문해 변화의 속도는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살아 보니 30년 전 서울 모습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며 지금은 완전히 다른 나라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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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남짓 사이에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있었고 민주주의에로의 대전환이 있었다. 경제성장도 두드러져 ‘한국의 삼성’은 이제 ‘세계의 삼성’이 되었다. 다방에서 카페로의 변모는 사회와 경제의 근대화와 함께 이 나라의 문화가 바뀐 것을 의미한다.
일한 사이에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 개최가 있었고 갑자기 파급된 일본 내 한류 붐도 끝을 모른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도 젊은 일본인 여성이 얼마나 많은가. 케이팝과 한국 배우의 매력에 사로잡힌 그녀들의 존재는 과거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한 관계는 어려워졌다. 모처럼 박근혜 씨라는 주목받는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하다못해 미국을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러주면 고맙겠는데 그런 기색은 없다. 다케시마(竹島·독도)와 군위안부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물어도 이 상태로는 언제 일본을 방문할 수 있을지 짐작이 안 된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쁜 뉴스도 겹쳤다. 도쿄의 한류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일부 우익 단체가 한국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며 데모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일본인의 움직임도 보도돼 다행이지만 이런 영상을 서울에서 보는 것은 부끄럽고 견디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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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 국회의장인 원로 김재순 씨를 방문했다. 그리운 옛날 얘기로 꽃을 피웠는데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정확히 20년 전 국회의장으로 한일 의원연맹 회장이 된 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장래의 총리 후보들을 만나고 싶다고 해 내가 안내역을 맡게 됐다.
호텔로 맞이하러 가자 뜻밖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주일 공사가 찾아와 열심히 이 만남을 중단시키려 했다. “국회의장이나 되는 분이 일본의 의원 사무실을 돌면서 방문하면 한국의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만나고 싶다면 여기로 불러 모아주세요.”
이를 의장이 거절하며 몹시 꾸짖고 있었다. “바보 같은 말을 하지 말라. 내가 면담을 신청한 것이니 방문하는 게 당연하다. 한일 관계의 내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한신(중국 한나라 장군)처럼 남의 가랑이 밑을 기는 일이라도 할 것이다.”
이렇게 해 나는 그를 안내하며 의원 사무실을 돌았는데 이후 완전히 그의 왕 팬이 됐다. 얼마나 큰 그릇인가. 이런 정치가는 요즘 일한의 어디서도 좀처럼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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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