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하지만 이 사건의 법적인 마무리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앞으로 치매나 중풍 등의 발병률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특히 치매 노인 수는 2025년 100만 명이 넘고, 2050년에는 237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그러다 보면 거동이 불편한 배우자를 혼자 돌보려고 무리하다 ‘간병살인’을 저지르는 일 또한 늘어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노노(老老) 간병의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조차 2008년 7월부터 실시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통해 제공되는 시설보호서비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일 전국에 4200개가 넘는 요양시설(5∼9명의 노인을 돌보는 소규모 요양공동생활가정 포함)을 활용할 수 있다면, ‘간병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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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소개할 A 할머니 이야기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밝은 노인들이 스스로 요양시설을 선택하는 이유, 반대하는 가족들을 설득하면서까지 시설에서 생활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는 작년 4월부터 요양시설에서 살고 있는 79세 노인입니다. 여기 들어오기로 결정한 건 나 자신이에요. 3년 전 뇌경색으로 한쪽 몸의 마비가 왔고, 2년 가까이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녔지만 큰 차도가 없었어요. 그때 결단을 내렸죠. 여든 넘은 남편이나 살기 바쁜 자식들이 나를 돌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거든요.
남편은 시설에 들어오는 걸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나도 많이 울었어요. 전에는 자식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이 나이 되고 보니까 혼자 집에 남아야 하는 남편이 너무 가엾어서 그냥 집에서 살 때까지 살다가 같이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해봤어요. 하지만 자식들을 봐서라도 그럴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 인정조사를 통해 2등급 판정을 받았고 집에서 가까운 이 시설을 선택했지요.
솔직히 처음에는 심란했어요. 하필이면 내가 들어오던 날 어떤 노인이 죽어 나가는 걸 봤거든요. 남편은 돈이 들더라도 병원에 가자고 졸랐어요. 하지만 난 꿈쩍도 안했어요. 병원 가봤자 수술해서 나을 병도 아닌데 돈 들이고 고생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물리치료 받고 재활 운동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마음을 다잡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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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만족하는 건 음식이지요. 노인 상태에 따라서 유동식이나 죽, 일반식 등 맞춤형 식사가 나오거든요. 또 직원과 요양보호사들이 눈을 맞추고 자꾸 말을 붙여주니까 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낮에는 노래교실에서 노래하고, 책도 보고, 사람을 좋아해서 얘기도 많이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가장 큰 걱정은 집에 혼자 있는 남편이죠. 남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여기 와요. 걸어서 20분 정도로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또 여기 오는 게 중요한 소일거리예요. 무슨 얘기 하냐고요? 매일 만나니까 할 얘기도 없어요. 그냥 마음으로, ‘오늘은 좀 어떻소? 힘들더라도 희망을 잃지 맙시다’라고 얘기해요.
치매에 걸린 83세의 어머니를 보러 50대 후반의 아들이 매일 저녁에 찾아오는데 난 그 사람 볼 때마다 어머니가 집에 있다면 저렇게 좋은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시설에 계시니까 더 애틋해지는 거죠. 시설에 보내면 가족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다 옛날 얘기예요.”
물론 배우자나 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요양시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요양시설이 비록 최선의 대안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간병살인이나 간병자살은 피할 수 있는 ‘차선의 대안’인 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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