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활짝 핀 두 전시… ‘매화’전&황규태 사진전
단원 김홍도의 ‘괴석에 매화’. 포스코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선비들의 유별난 사랑과 동경을 한 몸에 받은 매화를 통해 한국문화의 원형을 탐구하는 자리다.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문인과 묵객, 화가 57명의 매화도 매화첩 매화시 92점을 선보였다. 수묵의 간결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은 매화와 벚꽃이 어떻게 다른지 잘 구분하지 못하는 도시인의 마음을 단박에 빼앗아버린다. 3월 20일까지. 02-3457-1665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갤러리(신세계백화점 12층)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화려한 꽃들의 축제가 한창이다. 사진가 황규태 씨(75)가 2000년대 초반 이후 꽃을 테마로 한 작업을 한데 모았다. 하나로 뭉뚱그리기 힘든 다양한 스타일과 실험적 기법이 함축된 사진들이다. 삶과 죽음, 자연과 인공, 현실과 가상 등 ‘꽃’이란 단어 속에 얼마나 풍성한 미학과 철학의 담론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3월 3일까지. 02-310-1924
‘속세를 벗어나 산 넘고 물 건너,/ 세상 밖 이곳에 와 늙은이와 짝하네./그대가 나를 생각하지 않았다면,/해마다 빙설 같은 그 모습 어찌 볼 수 있을까.’ 매화를 평생의 벗으로 여겼던 퇴계 이황의 시다. 서울에 있는 지인이 손자에게 부탁해 안동 집까지 배로 실어 보내준 분재를 만난 기쁨을 읊은 작품이다. ‘梅花…’전에서는 퇴계의 ‘매화시첩’과 함께 시, 서, 화를 두루 접할 수 있다. 조선 중기 문인화가 창강 조속과 아들의 묵매첩을 비롯해 강세황 김홍도 조희룡 허련 김은호 박생광 장우성 박노수의 매화도가 숲을 이룬다. 연안 이씨 집안에 전해오는 ‘양교영매첩’, 다산 정약용의 장남 정학연이 지은 ‘매화삼십수’는 매화가 시 창작에 남긴 영향도 보여준다.
매화를 그릴 때는 원칙이 있었다. 줄기는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듯 굵고, 가는 것이 뒤틀려 괴이한 모습이어야 하며, 새 가지는 말쑥하게 빼어나야 하며, 어린 가지는 강건해야 하고, 꽃은 기이하고 아리따워야 한다는 것. 작품마다 이런 요소가 어떻게 지켜지고 변형됐는지 비교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거센 풍상을 이겨낸 듯한 강세황의 고목,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필치가 느껴지는 조희룡의 매화나무, 추상적이면서 생기 넘치는 색채가 조화로운 박생광의 매화…. 5만 원권 지폐에 인쇄된 ‘월매도’의 화가 어몽룡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하늘 향해 곧게 뻗어난 햇가지에 맺힌 꽃봉오리는 선비의 의연한 기개를 드러내며 묵매도로 명성을 얻은 실력을 짐작하게 한다.
○ 꽃을 탐하다
황규태 씨의 ‘꽃들의 외출’은 활짝 핀 목련나무에서 줄기를 지우고 꽃송이로만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꽃을 테마로 다양한 기법과 스타일의 사진작품을 선보였다. 신세계갤러리 제공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