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금융公수석연구원 ‘北주민 왜 작아졌나’ 논문2002년 함께 탈북한 남편 김병욱씨도 2년 전 학위… 北약사 이혜경씨도 박사 따
첫 북한학 박사 탈북자 부부인 김영희 한국정책금융공사 수석연구원(왼쪽)과 남편 김병욱 씨. 김영희 씨 제공
북한 원산경제대학(현재의 정준택경제대학)에서 회계(국가재정)를 전공하고 회계사로 근무했던 김 연구원은 2002년 남편 김 씨와 함께 한국에 왔다. 산업은행을 거쳐 2007년부터 정책금융공사에서 북한의 산업부문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분단 이전까지는 남한 주민보다 체격이 컸던 북한 주민이 왜 작아졌는지 △이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응은 적절했는지를 진단했다. 특히 1930년대 초 소련(러시아), 1950년대 말 중국, 1990년대 북한 등 세 곳 모두 대기근이 발생했지만 유독 북한에서만 20년 넘도록 신체 왜소 현상이 지속되는 이유를 찾으려 했다. 그는 “북한이 국방공업에 우선 투자하면서 식품 생산이 부족해졌는데도 당국은 절약 정신만을 강조하며 주민들 사이에 ‘저소비 의식’이 형성되도록 한 것이 신체 왜소 현상을 야기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또 1970년대 재일교포 북송과 베이비붐으로 인구가 늘어나는데도 식량공급대책보다 식량수급자 조절책에 몰두했다. 1970년대 말 장려했던 ‘키 크기 운동’도 1980년대 초 ‘몸을 조화롭게 발달시키자’라는 표현으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북한 당국은 ‘국가는 주민들의 신체 건강을 위해 모든 조치를 취했으나 개별 일꾼들이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다’라며 해당 관료를 처형하는 등 책임을 전가했다.
한편 북한에서 약사로 근무하다 2002년 탈북한 이혜경 씨는 북한대학원대에서 ‘북한의 보건일꾼 양성 정책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이 씨의 논문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 체제의 상징이던 무상 치료를 유상 치료로 전환했다. 의사 약사 등 보건일꾼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북한 당국이 출퇴근을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에 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정상 출근하는 대신 환자에게 치료 명목의 비용을 징수해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