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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대기업 다니는 ‘보초남’이어야 하는 이유

입력 | 2013-02-02 03:00:00


남자가 복근운동 다섯 세트를 마치고 숨을 고르는데 옆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뭘 그렇게 죽기 살기로 운동을 해? 대학생이라며? 여자 친구도 만나고 놀러 다니고 해야지.”

피트니스센터에 다니면서 비슷한 말을 수백 번은 들었을 것이다. “운동하면 좋잖아요.” 적당히 대답해둔다.

‘보초남’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보초남이란 소년(보이)의 얼굴에 초콜릿 복근을 가진 ‘얼짱 몸짱’ 남자를 뜻한다. 남자는 작년 겨울방학에 성형외과에서 돌출 입 수술을 받았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어머니를 설득한 결과였다.

선배들의 말대로 제대로 준비를 해야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취업이든 결혼이든 인생의 성공이든.

“그런데 요즘 여기,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많아? 우리야 뱃살 빼려고 이 고생이지만….”

이번엔 스테퍼를 밟는데, 아저씨가 또 말을 붙였다. 남자는 이래서 아저씨들이 부담스럽다. 자기 세대의 경험만으로 재단하려 든다.

그들의 시대에는 적당히 공부하고 놀아도 원하는 자리에 설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어야만 한다. 스펙이나 실력은 물론이고 건강과 외모까지, 이른바 ‘완벽’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고시나 공무원까지는 몰라도 ‘대기업 다니는 보초남’ 정도는 되어야 첫 단추를 제대로 꿰는 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취업만이 아니다. 여자들의 기대수준에 맞추려면 가혹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내세울 만한 남자 친구’ 자격은 적당히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선배들의 경험담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었다. 없으면 못 살 것 같던 사랑도 취업 재수 몇 달 만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는.

그러니까 성공과 행복을 위한 첫걸음부터 루저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면 ‘보초남’이 되어 죽기 살기 식으로 자기관리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승자 외에는 모두 루저가 되는 세상이므로.

트레드밀까지 따라온 아저씨가 TV 뉴스를 보다가 혀를 끌끌 찼다. 사상 처음으로 20대 취업자 수가 60대 이상 취업자 수보다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내용이었다. “중소기업에는 사람이 없어서 난리라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배가 불러서 그래.”

남자는 참지 못하고 따졌다. “나중에 따님이 못 들어본 회사 다니는 남자를 데려와서는 사랑하니까 결혼한다고 하면 환영해주실 건가요?”

내친김에 한마디 보탰다. “아드님이 스펙 같은 것 하나도 신경 안 쓰다가 아무 데나 취직해도 격려해주실 건가요?”

남자는 말문이 막힌 아저씨를 뒤로한 채 샤워실로 향했다. 마음속의 말을 쏟아냈는데도 기분이 나아지기는커녕 우울하기만 했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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