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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재건의 사명, 한국인에게 배웠다”

입력 | 2013-01-15 03:00:00

한국연수 나지불라 사이드 씨




탈레반의 로켓포 공격과 자살폭탄 테러,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와 핏물….

내전이 계속되는 조국의 참상을 지켜보던 아프가니스탄 청년은 나라를 위해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다졌다. 그 결심의 동력은 너무도 생소했던 나라 한국, 그리고 한국인.

아프간인 나지불라 사이드 씨(28·사진)는 아프간에서 한국을 제일 잘 아는 지한파 중 한 명이다. 2010년부터 2년 넘게 한국의 아프간 지방재건팀(PRT)에서 통역으로 일했다. 영어에 능통한 그는 아프간 현지어인 다리어-영어 통역과 행정업무를 하면서 한국인들을 지켜봤다. 최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에 14개월짜리 연수를 온 사이드 씨를 1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DI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한국인들은 가족 같아요. 계산된 목적을 갖고 아프간을 지원하러 몰려드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았어요. 매일 수십 명씩 죽어나가는 곳에서 우리의 삶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준 사람은 한국인뿐이었지요.”

사이드 씨는 “내 삶이 변화하는 순간마다 늘 한국과의 인연이 있었다”고 말했다. 20세에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방황할 때 따뜻하게 조언을 해준 사람이 한국계 미국인 교수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공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수의 말에 힘입어 그는 매일 주경야독하며 대학 졸업장을 따냈다. 이후 한국계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비정부기구(NGO)에서 4년간 일하다가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그 덕분에 PRT 근무 기회도 얻었다.

한국이 아프간 파르완 주에 설립한 PRT에서는 340명의 한국인이 현지인을 대상으로 교육과 의료봉사를 해 왔다. 기지 밖으로 나가려면 15kg에 달하는 방탄모와 방탄조끼를 착용해야 하고 PRT 내부에서도 언제 로켓포가 날아올지 모르는 위험에 시달리는 고된 활동이다.

“우리에겐 익숙한 일들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힘들었을 겁니다. 머리 바로 위로 총알이 지나가기도 하고요…. 그래도 그들은 아프간의 문학작품들을 뒤져가며 현지인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계속하더군요. 그렇게 열정적이고 진지한 한국인들에게서 대학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사이드 씨의 꿈은 ‘한국에서 공부해 중요하고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 그렇게 되면 정부에서 일할 기회를 얻고 영향력 있는 아프간 인사들과 네트워킹을 쌓아 아프간 재건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은 아프간이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후대에 물려줄 조국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원대한 목표를 갖게 해준 것도 바로 한국인들”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