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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 신설 靑국가안보실장

입력 | 2013-01-12 03:00:00

격변의 동북아… 新안보질서 꿰뚫는 ‘글로벌 아이’ 갖춰야




“도대체 누가 낸 아이디어냐? 누구의 발상이야?”

2012년 7월 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 해 6월 26일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처리하려다 밀실 논란을 야기한 한일 정보보호협정 추진 과정을 놓고 참모진을 매섭게 몰아쳤다.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6월 27일)하기 직전까지 참모들이 구체적인 처리 방침을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청와대와 외교통상부가 논란의 책임을 서로 미루는 것에 대해서도 역정을 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복잡한 외교안보 현안을 조율할 작전사령관이 없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며 “당시 지휘자가 없어 악기마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B급 오케스트라를 보는 듯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다양한 외교안보 정책 집행 및 조정 기능을 국익의 극대화라는 목표 아래 일사불란하게 조율해 내야 한다. 특히 미국 중국 주요 2개국(G2)의 지도부 교체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인해 동북아 안보 질서가 복잡해지고 있는 만큼 국가안보실장은 국제정치 흐름을 읽는 ‘글로벌 아이(global eye)’와 함께 고도의 정무 감각까지 갖춰야 한다.

① 한미동맹의 성과 유지하며 남북 관계 해소 이끌어 낼 전략가

국가안보실장은 높아진 한미동맹의 성과는 유지하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으로 냉각된 남북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지혜로운 정책 감각이 필요하다. 장거리 로켓 발사 등을 지렛대 삼아 물질적 지원을 요구하는 북한의 행태에는 이명박 정부처럼 강하게 거부하면서도, 경색된 남북 사이의 신뢰 회복을 추구해 가야 한다. 한미동맹과 남북 관계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만드는 지략가가 돼야 하는 것이다. 윤병세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계속 ‘엄한 아버지’ 스탠스만을 유지할 수는 없다. 한미동맹의 기초 아래 남북 관계 회복도 이뤄 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는 확실한 외교안보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대북 정책에 혼선이 생길 여지가 많았고 그것이 남북 관계를 더욱 꼬이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청와대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남북 관계는 바라지 않았다. 일부 청와대 참모의 강경 노선이 이 대통령을 ‘대북 강경론자’로 만든 측면도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② 외교 통일 국방 3대 축에 대한 고른 이해와 정무 감각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안보의 종합 코디네이터’인 만큼 외교 통일 국방이라는 3개 핵심 축에 대한 고른 이해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 중 한 명인 A 씨는 이 대통령에게 “당신은 국방 분야가 너무 약하다”라고 꾸지람을 받았다. 다른 핵심 참모 B 씨는 요즘도 “외교적 감각이 부족하다”라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외교안보 현안이 국내외 정치 현안과 긴밀하게 맞물릴 수밖에 없는 만큼 고도의 정무 감각이 필수적이다. 지난해 한일정보보호협정이 밀실 처리 논란 끝에 지금까지 흐지부지된 것도 한일 문제에 대해 국민이 갖는 ‘특별한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북 감시 체제 강화를 위해 일본의 안보 자산을 공유해야 한다’라는 안보적 발상에만 치우치다가 다른 핵심 요소를 놓쳐 버린 것이다.

③ G2가 격돌하는 동북아 신질서에 대한 전략적 통찰

이명박 정부의 한미 관계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는 평가를 적지 않게 받았다. 끊임없이 양국 관계가 삐걱거렸던 노무현 정부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도 많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좋은 점수를 주는 전문가가 많지 않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갈등 상황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통찰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가 중국 정부에 구금된 것을 놓고 “정부가 그동안 대중 외교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원만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라는 비판이 나왔다. 박 당선인의 외교안보 참모인 심윤조 새누리당 의원은 “한미 또는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가 ‘반중(反中) 동맹’으로 오해받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중국도 참여하는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를 만들 필요가 있고 그런 논의를 국가안보실에서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미 정책과 대중 정책의 전략적 조화를 이뤄 낼 수 있는 사람이 국가안보실장이 돼야 하는 이유이다.

④ 대통령에게 국익 차원 직언 언제든 할 수 있는 정치적 용기 필수

외교안보분야의 전직 장관급 인사는 “간혹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과 국익이 미묘하게 충돌하는 상황을 맞을 때가 있다. 이때 대통령에게 ‘국익 차원에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지지도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인 대통령이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무리한 외교적 발언이나 이벤트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의미다. 이 인사는 “그 순간은 달콤한 환호를 듣지만, 나중에 반드시 국익 차원의 반대급부를 치르게 된다”라고 경고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안보실장은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할 말을 다해 최선의 결정을 숙고할 수 있도록 하는 ‘최후의 게이트키퍼(gate keeper)’ 역할을 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임동원 씨가,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종석 씨가 일정 부분 그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자신이 맡은 직책과 상관없이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계속함으로써 공식 기구나 공식 경로를 무색게 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국가안보실장은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가 돼야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나 잡음을 막을 수 있다.

이승헌·윤완준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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