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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권재현]예수를 십자가에 두 번 못박는 우리

입력 | 2012-12-24 03:00:00


권재현 문화부 기자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이즈음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말이다. 그럼 그 축복의 정체는 뭘까. 많은 사람이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남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예수 말고도 수많은 성인이 강조했던 것이다.

예수가 인류에 안겨 준 진정한 축복이 뭘까.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태어나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 스스로 피 흘린 거룩한 희생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답 속에선 인간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처녀의 몸에 수태됐다거나 여러 이적을 행했다거나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졌다거나 부활했다는 신격화한 내용을 빼고 인간 예수를 들여다보자. 거기엔 그가 인간이기에 더 감동적인 신화가 꿈틀거리고 있다.

인간 예수가 안겨 주는 그 감동의 정체를 명료하게 규명한 사람이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다. 그에 따르면 예수 신화는 그 이전의 수많은 신화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남아 있는 신화의 상당수는 ‘살인의 추억’을 감추기 위한 알리바이로 작동했다. 공동체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무고한 누군가를 죽음에 몰아넣고 나서 갑자기 집단죄의식이 엄습하면 그 희생양을 신격화하는 방식으로 이를 망각하고, 은폐하고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 나서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수 신화는 이런 알리바이를 깨고 그 비인륜성을 고발한 신화다. 예수는 인간이 집단의 이름으로 무고한 희생양을 만드는 짓이 얼마나 끔찍한 짓인지를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 그 악마의 메커니즘에 뛰어들어 인류의 양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화인(火印)을 남긴 것이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겠다는 군중을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말로 물리쳤던 일.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잃더라도 길 잃은 단 한 마리의 양을 구하겠다는 선언, 예수가 물리친 악령이 스스로의 이름을 ‘군대’라고 부르며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에피소드…. 예수 신화의 수많은 요소가 가리키는 것은 집단의 이름으로 힘없고 약한 존재에 박해를 가하거나 그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곧 사탄의 길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말한 사탄은 어떤 실체적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욕망을 모방하다가 그 모방 욕망의 회오리에 휩쓸려 그 욕망의 실현에 걸림돌이 된 누군가를 향해 저주의 낙인을 찍고 집단적 폭력을 가하고픈 군중심리에 현혹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왕따 현상’에 인류가 반복해 온 원죄의 씨앗이 들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목회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틈만 나면 그 누군가를 사탄으로 낙인찍지 못해 안달이지 않은가.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이 때론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고, 때론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충한다고, 심지어 그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특정인을 향해 집단폭언을 퍼붓는 일이 얼마나 횡행하는가.

입으론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면서 이렇게 예수를 십자가에 두 번 못 박는 사람들로 넘쳐 나는 세상이다. 이를 보면서 웃고 있는 이가 누굴까. 예수일까 아니면 사탄일까.

이제 크리스마스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하는 날에 그쳐선 안 된다. 그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누군가를 겨냥했던 증오의 마음을 씻어 내고 용서를 구하는 날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축복이다.

권재현 문화부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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