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송년 독주회 여는 피아니스트 김정원 씨
피아니스트 김정원 씨는 “음악도, 음식도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변해 간다. 예전에는 떡볶이 순대 소시지 어묵 튀김을 좋아했는데 최근에는 싱겁고 담백한 음식이 맛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장소 제공 카페 아티제 청계광장점
연주자의 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맑은 음표가 차례차례 가만히 다가와 그의 마음에 닿았다가 사라졌다.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연습실로 달려갔다.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그가 다음 달에 여는 독주회의 주요 프로그램이 바로 그 곡, 슈베르트 소나타 21번이다.
“뛰어난 연주를 접하면 둘 중 하나예요. ‘아, 난 피아노를 그만 쳐야 해’ 하고 좌절하거나 반대로 더 치고 싶어지거나. 루푸는 후자였어요. 그날 밤 콘서트에서 받은 느낌으로 연주해봤는데 내가 아는 척, 능청스러운 척하면서 거짓말로 치고 있더라고요. 내 것만 온전히 담아서 쳐야겠다고 다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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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슈베르트는 늘 곁에 있었지만 왠지 싱겁고 심심한 음악이었다.
“슈베르트 작품은 간이 안 맞는 것 같았어요.(웃음) 역시 나는 쇼팽인가,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처럼 짭짤하고 매콤달콤한 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슈베르트 악보에는 음표가 많지 않아요. 그 비어 있는 공간에서 조금 일찍 또는 늦게 나오거나 페달링이 살짝 어긋나거나 하면 여과 없이 다 드러나죠. 슈베르트의 여백이 매력적이지만 무대에 올리기에는 좀 무서웠죠.”
19일 만난 그는 ‘진짜 김정원’에 대해 얘기했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년)에 출연하고 가수 김동률, 하림 등과 ‘김정원과 친구들’ 공연을 꾸미면서 화려한 조명이 그를 비췄다. 클래식 연주자의 남다른 행보는 오해도 불러 일으켰다.
2010년 서울국제음악제 공연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 전화가 걸려왔다. 이날 공연을 봤다는 관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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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이었지만 그날 밤새 잠을 설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내면에서 음악적 고민과 숙제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는 그동안 무대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슈베르트를 마주하기로 했다. 연주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그는 “아무리 낯선 레퍼토리라 해도 청중이 지루하게 느낀다면 그건 연주자 탓이다”라고 말해왔다. 그 바탕엔 ‘나는 청중을 재밌게 만드는 노하우를 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관객이 쫙 빨려 들어오지 않고 프로그램 북을 뒤척인다거나 하면 속된 표현으로 ‘다 죽었어’ 하고 필살기를 선보였지요. 연주하면서 즉흥적으로 순간순간 조미료를 치는 거예요. ‘포르테피아노(세게 한 뒤에 곧 약하게)’ 부분에서 ‘수비토피아노(갑자기 여리게)’로 더 과장되게 한다든지 해서 관객을 끌리게 하는 거죠.”
하지만 이번 독주회에서는 청중을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다. 슈베르트의 깊고 단단한 이야기에 그 자신의 것을 더해 담담하게 말하듯 연주하려고 한다. 바흐로만 꾸민 1부에서는 ‘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 중 코랄, 이탈리안 콘체르토, 샤콘 D단조를 들려준다. 12월 29일 오후 7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4만∼6만 원. 070-8879-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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