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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러 공장 다닙니다”

입력 | 2012-11-20 03:00:00

창단 27년째 린나이 팝스… 단원 절반이 음대출신




박문경 씨(가운데)가 16일 ‘국군장병과 지역주민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 공연에서 색소폰으로 패티김의 히트곡 ‘사랑은 생명의 꽃’을 연주하고 있다. 린나이코리아 제공


16일 오후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2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군장병과 지역주민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가 끝난 후 연주자들은 직접 악기를 챙겨 나르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여느 오케스트라 같으면 공연이 끝난 뒤 도우미(헬퍼)가 악기를 챙겨주지만 이들은 공연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보일러 및 가스레인지 제조업체 린나이코리아가 운영하는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 공장 조립라인서 ‘한솥밥’

린나이 팝스는 42명으로 구성된 ‘윈드 오케스트라’(관악기와 타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다. 지휘자를 빼고는 모두 린나이코리아 직원들이다. 특히 생산직이 절반을 넘는다.

린나이 팝스는 1986년 클래식 애호가인 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현 명예고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꾸려졌다. 국내 기업 오케스트라 가운데 단원의 절반가량이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전문 연주자로 이뤄진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콧대가 높다는 음대 출신들이 기꺼이 제조업체에 취직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음악을 하는 이유는 회사의 남다른 음악사랑 덕분이다. 린나이는 인천 부평공장에 합주실과 개인 및 중주(重奏) 연습실을 운영하며 연간 4억 원을 지원한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매주 4차례의 정기 연습시간은 물론 주말이나 일과 후에 주로 열리는 공연시간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수당을 지급한다.

린나이코리아 부평공장에서 가정용 가스레인지를 만드는 조립1파트는 전체 16명 중 양명식 반장을 포함한 14명이 단원이다. 연습과 공연 스케줄에 맞춰 작업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회사가 배려한 것이다. 단원들도 다른 직원에게 피해를 덜 주기 위해 연습 시간을 피해 잔업을 자청해서 한다.

린나이 팝스 단원들이 16일 경기 의정부시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마친 뒤 트럭에 악기를 옮겨 싣고 있다.


○ 음악에 미친 실력파 연주자들

인기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들처럼 린나이 팝스 단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실력자들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박문경 씨(33)는 중학교 1학년 때 “교내 밴드는 공연이 끝난 뒤 자장면을 사준다”는 이야기에 혹해 음악을 시작했다. 그는 가난으로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과 음색이 닮은 색소폰의 매력에 빠져 음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군악대에 입대했다. 박 씨는 제대 직후인 2002년 초 ‘린나이에서는 일과 음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옛 지도교수의 악기를 빌려 무작정 상경했고 오디션을 거쳐 같은 해 8월 입사했다. 박 씨는 전주시향, 광주시향, 인시엠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할 정도의 실력파다.

가스레인지 파이프 이음매 조립을 맡은 송세희 씨(37)는 경희대 음대를 나온 주부다. 대학 졸업 후 전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다 2001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무대를 떠났다. 송 씨는 지난해 린나이 팝스가 단원을 뽑는다는 소식에 “공장 일을 견딜 수 있겠냐”는 남편의 걱정을 뒤로하고 오디션을 치러 입사했다. 남편은 첫 공연이 열리던 날 리허설 시간에 퀵서비스로 꽃다발을 무대에 배달할 정도로 열렬한 팬이 됐다.

린나이 팝스는 올해에만 28회, 창단 이후 총 600회가 넘는 연주회를 소화했다. 27년째 한결같이 이어온 린나이 팝스의 활동은 다른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코레일은 최근 린나이 팝스에 조언을 구해 음악에 관심 있는 직원과 시민들의 혼성팀으로 오케스트라를 꾸렸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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