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성분 3색 구분 너무 단순… 식품정보 왜곡 우려
노봉수 한국식품과학회 부회장은 TV프로그램 출연, 저술 활동, 정부 자문 등을 통해 식품에 관한 전문 지식을 알려왔다. 그는 “신호등 표시제는 득보다 실이 많은 정책”이라며 건강신문고를 두드렸다.
“신호등 표시제는 영양성분에 대한 정보를 과도하게 단순화한다. 어린이 비만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식품 선택이나 영양 교육에 혼란을 주므로 강제적으로 성급하게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 섣부른 규제보다는 식생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노봉수 한국식품과학회 부회장·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슈퍼에서 물건을 살 때 △지방 △포화지방 △당류 △나트륨 등 4가지 영양소를 색깔로 표기해놓은 제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신호등 표시제를 실시하는 제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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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품별로 자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가 조만간 의무화될 수도 있다. 신호등 표시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국회에 상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가 적지 않다. 건강 신문고를 두드린 노봉수 한국식품과학회 부회장도 이 제도가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주장한다. 신호등 표시제에 의외로 많은 허점이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노 부회장은 이 제도를 성급하게 의무화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빠르게 식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표시가 지나치게 단순화돼 있어 영양 정보를 충분하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어린이들은 어떤 성분을 얼마나 섭취하는 게 좋은지 뚜렷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영양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상황이라면 아이들은 영양정보가 적힌 숫자(함량)보다는 색깔이 주는 이미지만 기억한다. 이 경우 적색은 나쁘게, 녹색은 좋게 인식하지 않을까.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굳어지면 오히려 식생활이 불균형해진다고 그는 지적한다.
노 부회장은 이 제도로 식품 정보가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학교 주변 문구점에서 판매되는 저가 식품에 신호등 표시제를 적용할 경우 대부분 녹색이나 황색으로 표시되고 적색은 드물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저가 식품을 더 건강한 식품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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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표시제는 4가지 영양성분의 함량을 적색, 황색, 녹색으로 표시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 제공
그는 신호등 표시제를 의무화하는 것이 어린이 비만의 해결책이 될 순 없다고 지적한다. 비만은 식습관, 운동부족, 유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발생하지 특정 식품이 원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신호등 표시제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업계, 학계, 소비자, 정부가 함께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범정부 차원에서 협의해 영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식생활과 운동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게 비만 예방에 더 효과적이라고도 덧붙였다.
노 부회장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다양한 학회의 전문가들로부터 두루 이야기를 경청해보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검토한 후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한 방향만 보고 제도를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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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표시제를 도입할 때 영양정보의 단순화나 정보의 왜곡 등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그러나 업계, 시민단체, 정계 등 다양한 의견을 거쳐 제도를 도입했다.
업계가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려고 다각적으로 노력했지만 적색이 되면 매출이 떨어질까 우려해서인지 참여는 소극적이었다. 이 때문에 이 제도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의무화를 추진하더라도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소비자, 전문가, 산업계 등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 또 국민이 신호등 표시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하고 교육하겠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