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 산업부 차장
예상과는 달리 영화를 보는 내내 깊은 몰입은 없었다. 몇 년의 차였지만 정서가 달랐다. 그런데 영화가 얼마 안 남았을 무렵 갑자기 감정이입이 되는 장면이 나왔다. 숨을 죽이고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시렸다. 서른이 훌쩍 넘은 주인공이 어머니가 사는 집 대문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곤궁함이 사랑의 짐이 되던 시절 그는 어머니에게 대들고 발로 차 대문을 우그러뜨렸다. 주인공은 대문을 손으로 펴 보려고 애쓰다가 흐느낀다. 끝내 제대로 펴지지 않는 대문은 못 이룬 첫사랑, 좌절, 그로 인한 삶의 궤적의 변화를 상징한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아픈 과거는 낙인으로 남아 평생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삶은 철제 대문처럼 한번 우그러지면 다시는 제 궤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강남 스타일’로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싸이도 10년이 넘는 가수 생활이 롤러코스터 같았다. 24세이던 2001년 ‘새’로 벼락 스타가 됐지만 같은 해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활동을 접었다. 2007년에는 병역 비리 문제가 터져 군 복무를 다시 하기도 했다. 방송 복귀 후 인터뷰에서 그는 “모진 풍파 맞다 보니 내공이 쌓였다”고 말했다.
얼마 전 동아일보가 보도한 신세계인터내셔날 노정호 상무의 이야기도 드라마틱하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30대 초반에 회사에서 해고됐다.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수개월간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만 패션 산업을 떠날 수 없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동대문에서 청바지 장사를 시작했고 미국에서 미란다 커와 비욘세 같은 인기 연예인들이 찾는 프리미엄 진을 만들었다. 신세계에 스카우트된 뒤 노 상무는 “외환위기 당시 해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굴곡진 과거가 평생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 우그러진 대문처럼 삶은 한번 궤도를 이탈하면 제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특별한 이들의 성공 스토리에도 별다른 비결은 없다. 시련에 무릎 꿇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지극히 단순한 공통점만 있을 뿐이다.
노숙자 신세에서 연 매출 100억 엔이 넘는 기업을 키운 일본의 재활용업체 세이카쓰소코의 호리노우치 규이치로 사장은 말했다. “길이 막혔다면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아니 때로는 아예 반대로 걸어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실패는 과거에 있었던 하나의 경험에 불과하다.”(괴짜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