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작가 16명의 퍼포먼스, 영상, 사진 30점 모은 ‘마스커레이드’전
《누구나 선천적, 후천적으로 부여받은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가끔은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란 공상에 빠질 때도 있다. 통상 백일몽에 그칠 법한 상상을 현실로 만든 ‘카멜레온’ 같은 예술가들이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이 기획한 ‘마스커레이드(Masquerade·가장하기)’전은 변장을 기반으로 한 국내외 작가 16명의 작품을 모은 전시다. 1990년대 이후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영상과 사진 30점을 선보였다. 성 인종 민족 계급처럼 나를 대변하는 지표를 다른 사람과 바꿔치기한 작품들은 때론 웃음을 주고 때론 엽기적이다.》
변장과 역할극 등을 통해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을 선보인 ‘마스커레이드’전에 나온 영상작품 ‘여름동화’. 작품 속에서 트랜스젠더와 남성이 백설공주로 등장해 고정된 성역할, 여성성의 표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질서와 억압에 도전하다
대부분 참여작가들은 현실과 비현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변장 퍼포먼스를 선택했다. 작가들은 연출과 배우를 맡아 1인 다역 드라마를 펼치며 사회가 강요한 질서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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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오르페우스부터 가수 조니 미첼까지 10명의 뮤즈를 의상과 분장으로 완벽 재현한 존 켈리, 분장과 가면으로 자신의 내적 분신을 표출한 강영호 씨의 작품도 놀랍다. 다이애나 왕세자빈으로 분장해 시중에 나도는 루머를 사진으로 재현한 앨리슨 잭슨, 고전 영화 속 등장인물로 변신해 새로운 스토리를 꾸민 밍웅 등은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허구인지를 묻고 있다.
관습과 고정관념을 뒤집다
여성으로 분장한 앤디 워홀을 찍은 크리스토퍼 마코스의 ‘레이디 워홀’.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폴린 부드리와 레나트 로렌츠 팀의 ‘Normal Work’는 19세기 노동계층의 백인 여성인 해나 컬윅을 주제로 삼았다. 주인의 지시에 따라 컬윅은 흑인노예와 부르주아 남성 등 다른 인종과 계급으로 변장한 사진을 남겼다. 작가 혼자 여고생 단체사진 속의 모든 등장인물로 변신한 사와다 도모코의 사진들은 집단의식에 함몰된 일본 사회를 엿보게 한다. 한국작가 니키 리는 펑크족, 댄서 등 특정 집단과 어울린 뒤 자기 정체성을 지우고 새로운 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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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