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무의미한 연명치료하다 죽는 사람 매년 3만 명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곳에서 ‘의사 3분 진료’를 거친 후 느끼는 허망함과 쓸쓸함을 털어내지 못하는 환자들이 본관 앞 나무그늘에서 온갖 상념에 젖은 채 앉아 있다. 금연구역인데도 꾸역꾸역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사람도 있다. 가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링거병과 항생제 등 각종 의약품을 주렁주렁 거치대에 달고 산책하는 환자들이 맨 먼저 마주치는 것은 본관 앞 시계탑이다.
여론조사에선 “연명치료 중단 찬성”
1000여 바퀴? 그러면 1년 반 정도로 수명이 늘어난다. 그 말기 환자가 세상을 떠나는 시간을 계산할 때 일반 환자들은 삶의 시간을 셈할 것이다. 시계탑은 생사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저리도 다른 계산법을 주었나 보다 생각하고 있을 때쯤 낯익은 노년의 신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무더위가 시작된 7월 중순이었는데 그는 검은 중절모를 깊이 눌러 쓰고 검은 겨울 외투에 가죽장갑까지 끼었다. 면도도 하지 않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부도난 H그룹 C회장이었다. 대장암 판정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진 시기였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바로 시계탑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때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으로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으나 아내의 신경을 건드릴까 봐 그만두었다. 재벌과 권력, 돈과 명예 그리고 삶이란 주제들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로부터 다시 2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나는 허대석 종양내과센터장과의 인터뷰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 쉼터에 앉았다. 1세기 전에 세워진 시계탑은 수많은 삶과 죽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허 교수는 벌써 수천 명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잊어버린 죽음은 이의 몇십 배에 이를 것이다.
본관에 있는 그의 연구실은 각종 데이터로 넘쳐 났다. 그는 얼마 전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며 응급환자를 봐 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우리들은 너무 죽음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독특한 문화 때문에 삶이 고달프다고도 했다. 온 가족이 동으로 서로 뛰어다니면서 끝까지 환자를 치료하려고 명의에게만 매달리는 우리의 임종문화에 어떤 모멘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중환자실이 없는 요양시설이나 자택에서 사망하는 연명치료자도 허다하다. 동네마다 알게 모르게 간병을 받고 있는 이른바 식물인간까지 감안하면 무의미한 연명치료 사망자는 더욱 늘어난다. 우리의 임종문화가 매우 거칠고 환자의 존엄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족이 받은 상처도 엄청 컸으리라고 짐작이 간다.
허 교수는 15년 전부터 사전의료의향서(이전에는 생전 유언 또는 사전의료지시서로 불렸다) 쓰기 캠페인을 벌여 왔다. 그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을 겸임하고 있었던 2009년에는 이 의향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바탕을 마련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는 단순히 죽음의 시간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가 희망하면 사전의료의향서를 제출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롤모델이 되는 기회였다.
죽음 맞닥뜨리면 환자-가족이 반대
최철주 칼럼니스트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 [채널A 영상] ‘요양병원↑ 산부인과↓’ 병원도 양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