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어릴 적 편을 갈라 놀 때 사람이 홀수이면 양쪽 편에서 다 뛰는 친구를 가리키는 단어도 깍두기였다. 깍두기는 그 놀이를 제일 잘하거나, 반대로 가장 못하는 아이에게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아이가 어느 한 편에 속하면 승패가 기울기 때문이다. 깍두기는 게임을 공정하게 만드는 도구인 동시에 잘났거나 못났거나 한데 어울릴 수 있게 해 주는 묘책이었다.
얼마 전 해거름에 동네 놀이터를 지나가다 하나 둘 모여드는 초등학생들을 봤다. 학원 가방을 두세 개씩 든 아이들은 어두컴컴해져야 비로소 놀이터에서 한숨 돌리는 모양이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가방을 벗어 던지고 뛰어놀기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초등학생을 본 게 오랜만이라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노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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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아이가 안쓰러워 내가 아이들 틈에 끼었다. “얘들아. 너희 깍두기 없니? 얘가 깍두기하면 되겠는데”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일제히 “그게 뭐예요?”라고 되물었다.
아니, 깍두기를 모르다니….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헐!’이었다. 그 뒤로 놀이터나 공원에서 아이들을 보면 종종 물어봤다. 혹시 깍두기를 아느냐고. 열에 일곱은 설렁탕 김치라고 대답했다. 동네 친구를 만들기 위해 학원에 간다고 할 정도로 놀이 문화가 없는 요즘 아이들은 깍두기를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줄넘기 과외는 옛말이요, 요즘은 자녀들에게 신체 놀이를 가르치기 위해 엄마들이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놀이 그룹을 짜는 세상이다. 서울 강남의 한 신체놀이 교습소는 명문대 체육학과 출신들이 고무줄놀이와 땅따먹기를 가르쳐 준단다.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로 신체 놀이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아이들은 여럿이 함께 하는 신체 놀이를 통해 몸을 튼튼하게 하기도 하지만 또래 사이의 질서를 익힌다.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가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놀이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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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능력의 퇴화와 더불어 요즘 아이들 사이에 깍두기가 실종된 것은 더욱 안타깝다. 좀 뒤져서 어느 편도 원치 않는 아이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깍두기의 미덕이 살아 있다면 왕따도 좀 수그러들련만….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